햇살이 나를 범해 나는 그를 낳는다
배부름도 산통도 없이 쑤욱쑥 낳은 그
그래서 만만한 게다
무덤덤히 품는 게다
단 한 벌로 계절 나는 무채색 저 의복을
한평생 단 한 번도 갈아입지 못하면서도
그는 참 비위도 좋다
날 따르는 것을 보면
편안하다 저 어둠 속 그에겐 굴레가 없다
땅바닥 드러누워 온갖 흉내 다 해내다
비 듣자 따르던 발길
잠시나마 멈춰 선,
백윤석,「그림자」- 전문
이 시조는 2000년부터 시를 쓰다가 시조를 쓰게 된 지 얼마 안돼 남의 시를 읽다가 영감이 떠올라 같은 제목으로 쓴 시조다.
처음엔 4수로 써 2003년 2월 처음 중앙시조백일장에 응모하였는데 차상으로 입상했다. 운율만 맞추다가 너무 쉽게 얼떨결에 얻은 쾌거였다
이때부터 좋은 시조에 대한 갈증이 시작된 듯 싶다.
이 시의 강점은 자기만의 언어를 구사한 데 있다. 평범한 단어를 사용했지만 아무도 안 쓴 자기만의 문장으로 그림자를 형상화 하는데 성공했다.
"햇살이 나를 범해 나는 그를 낳는다."
이 첫수 초장의 성공적인 배치로 중장과 종장은 당위성이 확보된다.
둘째 수와 셋째 수도 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시나 시조나 첫구절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독자들이 더 읽고 싶다는 충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에너지를 소지한다.
너도 나도 시인 명함을 갖고 있는 현시대에
나만의 문장을 만들어 내는 시인이야 말로
참시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