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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R May 23. 2023

당신을 위한 재현과 어느 희생된 삶에 관하여

단편 <패스토럴리아(Pastoralia)>, 조지 손더스 저


주인공은 '외딴 지역' 에 위치한 어느 동굴에서 동료와 함께 '동굴인간' 을 재현하며 생계를 유지한다. 이 원시 인간의 재현은 365일 24시간 내내 이루어진다. 그곳의 사람들은 영어를 쓰지 못하며 동굴 밖 현실 세계의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팩스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들의 동굴에는 <아무도 머리를 들이밀지 않는다>. 이따금 동굴사람들을 상대로 한 자신의 우월적 위치를 확실히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나 관리자들만 들를 뿐이다. 그들의 의식주는 전적으로 관리자들에게 달려 있다. 테마파크의 소유인 동굴 속에 살며 동굴사람처럼 옷을 입어야 하며 동굴사람처럼 행동했을 때 음식을 하사받는다. 그들의 음식은 갓 잡은 죽은 염소이며 진짜 원시 인간처럼 직접 손질해서 먹어야 한다. 이 또한 동굴사람들의 업무 중 하나이다.


동굴 밖 사람들에게 그런 동굴사람들이 재현하는 '동굴인간' 의 삶은 자기 삶의 온전함을 확인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그들은 동굴사람이 재현물이 아닌 현실인간으로서 존재를 드러내면 분노하며 길길이 날뛴다. 자신들의 유희거리를 위해 동굴사람들이 무엇을 희생했는지, 그들의 상황과 여건을 알아보기 위해 <머리를 들이미는> 이는 어디에도 없다.


물론, 동굴사람들에게도 현실의 삶이 있다. 그들은 대개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하층민이다. 동굴 밖 누군가의 '볼거리' 를 위한 동굴인간을 재현한 값으로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는다. 돈을 계속 벌기 위해서는 늘 '긍정적' 으로 생각하고 말해야 한다. '할 수 있는 것' 을 해야 한다. 할 수 있는 것을 하려면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자신의 공간에 들어가 '자기 일' 에 관해 고민하지 말아야 한다. 개인적 우울을 내비치지 말아야 한다. 늘 '정상적인' 동굴인간을 재현해 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생계를 감당할 수 없다. 죽어가는 엄마와 자식을 위한 병원비를 벌 수 없다. 감옥에 갇힌 자식을 구해낼 수 없다.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하지만, 일을 하기 위해선 가족을 돌봐 줄 간병인을 두어야 한다. 그리고 다시 그 간병인에게 생계를 위해 번 돈을 주어야 한다. 가난의 굴레가 지속된다.


동굴사람들은 자신들이 본 생리적인 변에 대해서도 회사에 비용을 부담시켰다는 이유로 값을 치러야 한다. 인간 '폐기물' 봉투는 사실 스스로를 '인간 폐기물' 로 낙인찍는 약속이나 다름없다.


한정된 자리를 두고 살아남기 위해 내 옆의 누군가를 고발해야만 살아남는 현실 속 시뮬레이션. 그 속에서 개인은 파트너 평가라는 명목으로 수평 감시를 종용당한다. (1) 파트너의 태도는 어떠한가 (2) 파트너를 평가하라 (3) 파트너에게 '명상' 이 필요한가. 관리자들은 이야기한다. "'최고' 의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일관되게' 일하면서 '진실' 을 말하라. 동료와 너는 별개의 존재이니 '평균 이하' 의 동료를 내팽개치는 것에 대해 죄책감이 아닌 자부심을 느껴라. 이 모든 것은 네가 사인한 <고용 약정서> 에 기재된 내용이다."


동굴인간들은 현실 모어인 영어로 이야기할 수 없다. 언어를 빼앗긴 자는 24/7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을 거세당한 것과 다름없다. 작품 내내 굶주려야만 하던 동굴인간은 '평균 이하' 의 동료를 '진실' 에 기반하여 평가한 후에야 보상을 얻는다. 동료에게 해고는 곧 살인과 다름없으나, 그 해고를 통해 갓 신선하게 잡은 염소를 하사받는다. 지속적인 (그러나 분명 일시적인) 고용을 보장받는다. 이 모든 부당함에도 그들에겐 자력구제할 능력이 없으며, 그 누구도 그들의 삶에 <머리를 들이밀지 않는다>.


누군가를 위한 유희의 재현 세계,

그것은 당신 옆 어느 삶을 희생한 대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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