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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R Jun 06. 2023

이토록 당연하지 않은 불행에 관하여

책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김누리 저


저자는 우리 사회가 이토록 <당연하지 않은> 불행을 겪고 있는 원인에 관한 진단을 <68혁명의 부재> 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렇다면 68혁명이란 무엇인가. 매체의 발달과 함께 '자유세계의 수호자' 인 미국 또한 일개 제국주의 국가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은 세계의 젊은이들은 부조리absurd 하고 비도덕적인 기성세대의 체제에 의문을 가지며 반기를 들게 된다. "금지를 금지하라," "모든 형태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 등의 구호로 상징될 수 있는 68혁명은 당대 기성세대의 체제를 무너뜨리고 보이지 않는 억압을 전복시킨 세계사적인 흐름이었다.


혁명의 여파는 정치뿐만 아니라 일상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적용이 되었다. 우선, 교육에서는 기존의 질서와 규범을 익혀 사회 체제에 잘 적응하도록 하는 '사회화' 과정보다 기존 체제에 반기를 드는 '비판' 교육을 중시하게 되었다. 문학 작품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도 ‘정의 권력Definitionsmacht’ 의 문제를 성찰하게 하며, 모든 지배적인 지식은 지배 계층의 지식이기에 무분별한 주입식 교육은 파시스트 교육임을 인지시킨다. 하나의 텍스트를 두고도 다양한 맥락을 파악하고 그에 따른 <자신의 비판적 견해> 를 표명하도록 가르친다. 헌법 제1조 “인간 존엄은 불가침하다(Die Würde des Menschen ist unantastbar)” 는 선언 하에 다시는 나치와 같은 인간 존엄 침해를 정당화하는 세력이 등장하지 않도록 일상의 파시즘부터 뿌리 뽑으려 했다.


교육과 언론을 비롯한 제도 속으로의 행진을 감행하던 혁명의 불길은 성의 정치학으로도 번지게 된다. 사람들은 성교육을 등한시하면, 내 안에 살아 있는 본능이 악마화되고 죄의식이 내면화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깊은 죄의식을 내면화한 인간일수록 약한 자아를 갖게 되고, 약한 자아를 가진 인간일수록 권력에 굴종적인 인간이 된다는 걸 알게 된다.


저자에 따르면, 이러한 세계사적 해방의 물결을 불러일으킨 1968년이 한국에서만 <억압과 굴종> 으로 나아가는 전환점이 되었다는 것이다. 책은 정치적으로 '빨갱이' 로 몰릴 가능성이 있었던 박정희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공격당하지 않기 위해 누구보다 앞장서서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 요구에 응했다고 이야기한다. 베트남전으로 인해 산업화의 가속화를 밟은 나라는 베트남전의 실태를 은폐해야만 했고, 그렇기에 베트남전으로 말미암은 68혁명의 물결 또한 차단했다.


결국 이에 따라, 한국 사회는 비판 교육은커녕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군대 문화를 일상의 민간인에게도 적용하게 된 셈이다. 이렇듯 일상에서도 군대 문화를 접하게 된 한국인 대다수는 ‘내 안의 파시즘’ 을 인식하지 못한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더불어, 인권 감수성 부재, 비판 없는 소비주의 문화의 팽배, 생태 감수성 부재와 더불어, 이 사회가 심각한 자기 착취를 요구하며, 착취의 결과로 생기는 온갖 불행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한다고 이야기한다.


68혁명 당시 가장 유명한 구호 중 하나는 바로 ‘정치 투쟁의 최전선은 내 안에 있다’ 라고 한다. 나를 이루고 있는 나의 사유, 감정, 감수성, 욕망, 무의식이 <내 것> 이 아니라 나를 호명하여 노예로 만든 <체제의 것> 이라면, 그런데 나는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면, 과연 '해방' 이라는 게 가능은 한가라는 역설적 의문.


폭력은 가치란 이름으로, 익명의 상식(혹은 사물)이란 이름으로 점점 개인의 외부에서 내면으로 위상을 달리한다. 저자는 우리 사회가 인지조차 못하는, 자기 계발이라 불리는 폭력적 자기 착취가 실상 지배 체계의 한 형태임을 인지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만약 소외 당한 삶을 전복시키지 못하면 끊임없이 배제당하며 착취당할 테니 우리는 이 현상을 <인식> 하며 타자의 고통과 억압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해야 하고, 인식을 위해선 독서를 해야 한다는 말씀까지.


유명한 책이기도 하고 <차이나는 클라스> 에서의 강연을 재미있게 봤던 터라 크레마클럽에 있는 걸 보고 냉큼 일독을 시작했다. 사실 통일 파트는 썩 그렇게 공감이 가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를 살아오면서 내가 무력감과 절망감을 느꼈던 포인트들을 쉬운 언어로 풀어주셔서 상당 부분 공감하며 읽었던 것 같다.


발췌

[...]  파시즘이 남긴 최악의 유산은 파시즘과 싸운 자들의 내면에 파시즘을 남기고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  정치 투쟁의 최전선은 내 안에 있다.


[...]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


[...]  자유인이 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노예 상태에 있으면서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환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  우리가 어떤 현상을 이해하려면 언어라는 수단을 가지고 접근할 수밖에 없습니다. 언어라는 그물로 포획한다고 비유할 수도 있겠지요. 언어가 없으면 우리는 현상을 파악할 수 없고, 현상을 파악하지 못하면 현상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언어는 변화와 개혁, 변혁과 혁명의 가장 중요한 전제입니다. 그런데 모든 언어는 ‘지배의 언어’입니다. 현실을 지배하는 자가 쓰는 언어를 우리는 따라 쓰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지배적인 언어는 지배하는 자의 언어입니다. 여기서 근본적인 딜레마가 발생합니다.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언어를 사용해야 하는데, 모든 언어는 지배 언어이기 때문에 그 언어를 사용하면 할수록 오히려 현실의 지배를 더 강화하게 되는 역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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