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라 엄마가 좋아하는 드라마를 같이 누워 봤다. 처음부터 보진 못했고 중간부터 띄엄띄엄 봤는데, 원작이 있는 드라마인 걸 알지만 줄곧 샬롯 퍼킨스 길먼Charlotte Perkins Gilman 의 <누런 벽지(The Yellow Wallpaper)> 가 떠올랐다.
신경쇠약 증세가 있는 아내에 김태희 캐릭터 주란이 겹치고 그녀를 가스라이팅하는 의사 남편에 김성오 캐릭터 재호가 겹친다. 물론 이 줄기의 이야기만이 있는 건 아니고 임지연과 최재림 캐릭터의 줄기가 엮여 있다. 모티프를 따왔다고 생각하면 포스터의 '마당에서 시체 냄새가 난다' 는 것은 정말로 많은 것을 설명하는 말이다.
<누런 벽지> 에서는 정신과 의사인 남편이 끊임없이 아내인 주인공을 대상으로 가스라이팅한다. 아내를 위해 저택으로 거처를 옮기며 겉으로는 다정한 모습을 보이나 집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아내의 의사를 무시하고 아내의 정신적 해방구나 마찬가지인 글을 쓰기 위한 펜을 뺏는다. 당신은 '휴식' 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누런 벽지가 붙어 있는 방에 가두다시피 한다. 아내에게 누런 벽지는 '폭력' 과 같다. 그리고 그 누런 벽지에 자신이 아닌 다른 어떤 여성이 기어 다니는 것만 같다는 생각 속에 사로잡히다 결국 어떤 의미에서 그 여성이 되고 만다.
19세기 여성의 지위상 <누런 벽지> 의 여자 주인공은 벽 속 여성에 자신을 투영하는 것에서 끝난다. 어쩌면 벽지 속 그 여성이 곧 주인공 자신이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아내를 끊임없이 불안하게 하는 집안의 '무언가' 는 끝내 밝혀지지 않고 읽는 독자로 하여금 당대 여성을 신경쇠약으로 이끄는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겠거니 추측하게 할 뿐이다. 어쩌면 주인공과 같은 처지에 있던 수많은 여성들이 그들만의 '누런 벽지' 에 파묻혀 사라졌을 거란 씁쓸한 생각과 함께.
그러나 21세기에 보여지는 <마당이 있는 집> 은 이를 전복시킨다. 주란을 끊임없이 불안하게 만드는 '무언가' 가 실재함을 가시화하고 실체화한다. 언니의 죽음에 얽힌 여성의 삶을 둘러싼 실재하는 위협을 보여주고, 주란이 미친 것이 아니며 그녀를 몰고 가는 남편의 위선을 폭로한다. 그리고 냄새나는 마당(누런 벽지)에 집어삼켜지는 게 아닌, 마당(진실)을 파헤치는 주체로 거듭난다.
앞서 이야기했듯 이야기는 김태희의 주란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하나의 줄기로만 이루어지지 않고 임지연의 상은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또 다른 줄기가 엮인다. 상은 또한 가부장적 세계 속 남편이 가하는 폭력을 엎는다. 끊임없는 가스라이팅과 성폭력을 당하던 상은은 남편을 죽여버린다. 둘은 협력과 배신을 일삼으며 서로에게 연리지처럼 얽힌다. 개인적인 바람은 두 사람이 연대하여 최종적으로는 가부장적 폭력에서 온전히 해방되길 바라지만, 찝찝한 건 장르가 미스터리 · 스릴러이기도 하고 지금까지로 보면 아들이랑 옆집 사람이 수상쩍다. 근데 주란이 권선징악으로 남편을 처치한다 해도 상업 대중문화 특성상 아들까지 어떻게 할 순 없지 않나. 지켜봐야 알겠지만 결말을 어떻게 낼지가 궁금하다. 원작이 있다던데 지금 병렬독서 중인 거 다 읽고 마음 편안할 때 읽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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