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 한쪽 벽에는 초등학생 때 있어 보여서 멋 모르고 샀던 영화 <타이타닉> 의 포스터가 걸려 있다. 처음 봤을 때 너무 슬퍼서 오열하긴 했지만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그거 뻔한 멜로 아니야? 라고 멋 모르고 폄하했던 이야기. 그러면서도 늘 방 한편에 포스터를 달아두었던 이야기.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이따금 <타이타닉> 을 생각해 보곤 한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라는 배우를 전 세계적 스타로 만든 작품이었지만, 내게 이 작품은 로즈 뷰케이터에서 로즈 도슨이길 선택한, 새장 속 장미이길 거부한 한 여성의 일대기나 다름없다.
어떤 작품이든 내레이터가 누구인지가 중요한데,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는 이 작품은 다른 누구도 아닌 노인이 된 로즈(어떤 성으로 불리든)라는 인물의 회상으로 이루어진다. 로즈는 잭 도슨이라는 인물이 달아준 날개로 인해, 가문(아버지)과 정략결혼으로 맺어진 남편의 새장 속 소유물로, 장미Rose 로 살기를 거부하고 자신의 삶을 찾는다.
새가 된 듯한 기분을 맛본 로즈는 다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눈요기 장식품으로서의 삶을 위한 코르셋을 벗어던지고, 속박 없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기록하고자 한다. 말과 차와 경비행기를 통해 자신의 삶의 지평을 넓혀가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가문, 정략결혼, 운명적 사랑과 같은 모든 것을 등지고 살아남은 로즈가 눈을 떼지 못했던 것은 그 무엇도 아닌 자유의 여신상이었다.
어쩌면 잭 도슨이라는 인물의 죽음은 스토리상 필연적인 수순이었던 건지도 모른다. 결혼이라는 현실 속에서 로즈가 또 어떤 속박에 얽매이게 될지 모르는 일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의 기억 속에 살아 숨 쉬게 한 건 그녀가 그에게 준 감사의 선물이 아니었을까.
어쨌든 중요한 건 그녀가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삶의 끝자락에서 자살을 감행하려던 그녀가 살아남아, 백 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