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묻고 싶은 게 있다. 대답하거라. 네가 멸족당한 고려 왕족의 후손이라 들었다, 맞느냐? 그도 아니면, 판서 가문의 서자로 태어나 호부호형을 못한 울분 때문에 들고 일어났다 들었다, 이것은 맞느냐? 허면, 뭣이냐. 대관절 네놈이 뭣이냔 말이냐.
- 난, 고려 왕조의 후손도, 정승 판서의 서자도, 몰락한 양반가의 자식도 아니오. 난 그저 내 아버지의 아들이오. 내 아버지, 씨종 아모개.
- 그럴 리가 없다. 그런 천한 몸에서 너같은 자가 났을리 없어.
- 허면 그대는 하늘의 아들이신 나랏님 몸에서 나 어찌 그리 천한 자가 되었습니까?
나라를 뒤집을 혁명을 일으킬 씨는 평범하고 천한 자의 몸에서 날리 없다는 기득권의 생각을 비틀고, 역적이란 무엇이고 누가 혹은 무엇이 평범한 이들을 역적으로 만드는가에 관한 주제의식이 명확한 너무나 좋은 작품이었다.
연인, 작가님이 5년을 준비했다는 작품. 한 작품을 위한 수백, 수천 번의 퇴고 속에서 작가는 얼마나 많은 인내와 자기비판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걸까. 좋아하는 작가님 작품에 연기력을 인정 받은 배우들이 한 번만 더 찍어보겠다고 애쓰고 노력하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하기까지 하다.
‘연인’은 ‘사랑에 빠진 인간이 어디까지, 무슨 일까지 할 수 있는가’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이야기다. 그리고 반대편에 사랑 대신 두려움에 끌려간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다. 사랑을 선택한 자의 끝이 비극이고 두려움에 압도된 자의 결말이 생존이라 해도, 그 과정에서 인간 감정의 정수(精髓)를 누린 이가 누구인지는 아마 본인만 알 것이다. 해서 나도 확신할 수 없지만, 어쩌면 삶의 목적은 생존이 아니라 아낌없이 사랑을 쏟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연인’을 썼다.
사랑의 범주는 성애적 사랑에만 국한되는가. 병자호란이라는 시대적 고통 속에서 임금에게 버림 받았으나, 사랑하는 가족, 사랑하는 정인, 내 삶의 터전을 지키고자 자기 한계의 끝을 뻗어나가는 이들의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