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보는 책을 볼 때면 목차를 먼저 구경하곤 한다. 수수께끼처럼 각각의 장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힌트처럼 얻어내는 재미도 있고, '이 장을 하나의 챕터로 선별할 만큼 중요도를 부여하는 게 맞는 건가?' 라는 의구심을 자아내는 것 또한 재미있다. 감사하게도 광복절 휴일이 있어 종일 읽을 수 있었는데, 사실 이번 호 서평은 현시대 유행하는 문화적 트렌드가 무엇이고, 국제 정세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진보주의자들의 시각에서 분석한 이야기들을 맛보기로나마 접해보고 싶어서 신청했다. 한마디로 최근 들어 하루하루 내가 너무 무식하단 게 절감돼서. 이번 호는 최근 이슈와 관련된 한국 학교 실태에 관한 이야기와 더불어 가깝게는 황금 새장에 갇힌 북한의 예술가들을 사유하고, 멀리는 범지구적인 환경오염 주범들을 추적하는 시각까지 파헤친다. 또한, 진보의 시야와 지평선을 넓혀주는 다양한 글들은 유럽 및 북미와 더불어 현재의 우리가 존재하는 한국의 삶까지 폭넓게 다루는데, 이로 인해 마치 내 눈을 가리고 있던 베일의 존재를 일깨우는 듯하다.
시작은 우리 삶의 주변부부터 시작한다. 대도시의 형성 및 발전은 자본의 밀집을 야기하며 주변부를 슬럼화시킨다는 것은 너무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자본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만든 빈익빈부익부의 구조 속에서 가난한 자들의 삶을 터전을 이루는 도시 외곽은 <소외된 땅> 으로 전락한다. 버려진 땅은 주류가 외면하며 모른 척 해온 가난과 이민자를 비롯한 온갖 사회 병폐의 집결지나 다름없다. 소수자성의 낙인을 가지고 죽느냐 사느냐라는 생존의 기로에 선 사람들. 이들은 존재 자체로 <경제> 를 무기로 대중들을 현혹하는 극우 세력의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극우를 향한 비판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자본을 향한 욕망은 그 어떤 사회적 가치보다도 돈을 우선시하게 만들고, 펜타닐을 위시한 마약 비상사태는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계속되는 우크라이나 사태는 평화와 안보를 둘러싼 현실의 실상을 깨우치게 하고, 허울뿐일지라도 나와 내 가족, 내가 사는 마을과 내가 속한 국가를 넘어선 인류 공동체의 안위를 염원하고자 이루었던 국제기구는 현실 속 정치·군사적 힘, 더 근본적으로는 자본의 공격 앞에 무력하게 무너지는 듯하다. 자본은 전 지구가 직면한 기후변화라는 위기에서도 기세등등하다. 국가는 표면상으로는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역설하면서도, 정작 환경오염의 주범들은 시스템의 기저에서 은밀히 보호하며, 이러한 세상의 균열을 응시해야 할 예술가들의 눈을 가리고 황금새장에 가두어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재생산하는 무한 연속 과정에 파묻히게 만든다.
이런 삶 속에서 전 지구적 최대 피해자인 아프리카 대륙의 교회들이 세상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상징으로 보인다. 이는 종교가 삶의 고단함을 덜어주는 아편으로써의 역할뿐만 아니라 사회 속 자신의 위치를 인식하고 모순을 도려낼 무언가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거 아닐까. "하나님을 믿고 죄를 짓지 않기 위해 존경받을 만한 행동을 하며, 현대 사회가 유혹으로 가득 차 있음을 인식할 것. 더 나아가 신을 찬양하기 위해 노래를 부르는 과정 또한 부를 쌓는 과정의 일환임을 잊지 말 것" 이라는 말은 교회 밖 현존하는 세속의 세계에 내디딘 발자취 속에서 나를 둘러싼 환경과 내 주변 존재들을 돌아보고, 그 속에서 자신을 억압하는 환경의 모순을 응시하라는 깨달음의 또 다른 표현이 아닐까 싶다.
르몽드코리아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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