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독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R Aug 19. 2023

전쟁은 평화, 자유는 굴종, 무지는 힘

책 <1984>, 조지 오웰 저


인류의 진보는 선형적 진보만을 전제하는가? 전제정치를 기반으로 한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린 조지 오웰의 <1984> 는 세계의 진보는 더 많은 희망을 향한 진보가 아닌, 더 많은 고통을 향한 진보가 아닌가를 역설한다.


역사상 전제 군주 시대의 〈하지 마〉라는 부정명령은 전체주의 시대의 〈해야 한다〉 라는 당위명령으로 변해왔고, 작품은 당위의 명령이 빅브라더의 세계에선 〈이렇게 되어 있다〉 라는 존재명령으로 변함을 이야기한다.


"그 어떤 외부세계도 인간의 의식을 통하지 않고서는 실재할 수 없" 으며 "오직 훈련받은 자만이 실재를 볼 수 있다" 는 논리는 일견 플라톤으로부터 이어지는 서구 사상사의 경험과 인식론에 근거한 말처럼 보인다. 그러나 무엇이 되었든 당의 눈을 통하지 않고는 실재를 볼 수 없다는 주장은 일당독재의 정당화로 귀결되고,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는 지배논리를 정립할 근거가 될 뿐이다.


작품 속 당은 깨어 있는 민중의 집단적 움직임을 막기 위해 가족 단위의 결속부터 해체시키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개인이 개인임을 멈출 때, 즉 집단에 예속될 때만 권력을 가지게 되며 굴종이 곧 자유라는 주장을 내건다.


작품의 말미에서 윈스턴은 결국 그들의 사상에 감화되어 빅 브라더를 사랑하게 된다. 이 대목에서 만인이 만인을 상대로 감시하는 소비사회의 성과주체가 결국 성과사회의 논리를 내면화하여 자기 착취를 일삼게 된다는 한병철 교수님의 저서들이 떠올랐다. 빅 브라더의 <이렇게 되어 있다> 라는 존재명령이 이제 성과주체의 <이렇게 할 수 있다> 라는 가능명령으로 변한 것 아닐까.


<제5도살장> 도 그렇고 일러스트가 있는 작품을 볼 때마다 감탄하는 지점은 삽화를 그리는 작가의 해석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표지는 오브라이언이 윈스턴에게 말하는 대사 중 한 구절을 이미지화한 것이나, 비단 오브라이언과 윈스턴 개인으로 국한시키지 않고 불특정 다수의 수많은 개인 중 하나로 대입해서 해석해도 말이 되게끔 그려져 있다. 더구나 전에 작품을 읽을 때 나는 기계의 눈을 상상했는데, 일러스트는 빅 브라더의 감시의 눈을 인간의 눈으로 그려놓았다. 이는 아마도 빅 브라더를 전면화하고 뒤로 숨은 이면의 독재 권력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 아닐까.


사실 개인적으로 재밌다고 생각하는 작품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자유는 힘, 무지는 굴종' 이라는 말에서 힘과 굴종이라는 단어의 교묘한 자리 바꿈으로 인해 '전쟁이 곧 평화' 라는 논리를 정당화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어릴 때는 민음사꺼로, 최근에는 문학동네와 열린책들 버전을 읽었는데 여러 번 읽고 나만의 여과물을 남길 가치는 충분한 작품인 것 같다.




INSTAGRAM @hppvlt

https://www.instagram.com/hppvlt/

매거진의 이전글 위선적 나르시시스트들의 수면 아래 고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