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독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R Sep 10. 2023

환상을 노래하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3년 9월호


제국주의는 먼 나라, 과거 일이 아니다. 이번 호는 일본해 표기의 세계화가 제국주의의 잔재임을 지적하는 것을 시작으로, 삶의 곳곳에 내면화되어 스며든 제국주의를 가시화하고 거리를 둘 것을 이야기한다.


중남미의 옥수수와 강낭콩은 그곳이 삶의 터전인 이들에게 생계 수단이기도 하나 동시에 자본과 결합된 미 제국주의의 생물해적행위Biopiracy 의 상징물이다. 이런 와중에 제국주의 시대 황금기를 되찾기 위해 스페인 우파는 미국과 손을 잡고자 하는 아이러니.


2차 대전 전범국의 일원이었던 오스트리아는 전쟁 이후 줄곧 중립국 위치를 고수해 왔으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계속해서 '입장 표명' 을 요구받고 있다. 능동적·참여적 중립국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던 오스트리아는, 이제 '중립국 오스트리아는 허상이다' 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국가와 국민이 아닌 자본 그 자체를 위해 싸우는 용병들은 전쟁이 확산되고 참상을 키우는데 일조한다. 자본이 키운 괴물들, 그들은 과연 자신들의 '고용주' 가 사라진 상황에서 푸틴의 명을 따를 것인가?


돈을 위해 전쟁을 불사하지 않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돈으로 자유를 사는 이들도 있다. 보석금은 가진 자들은 법의 그물망에서 쉽게 빠져나오게 만드는 반면, 없는 자들은 보석금 혹은 엄중한 형법이라는 마수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든다.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는 유럽에게 공포를 가져다주었으나, 서구 열강의 얌체짓을 견뎌왔던 개발도상국들은 일종의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 남의 불행을 보았을 때 기쁨을 느끼는 심리)를 경험한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 이민을 감행했던 이란인 이민자들. 미국도 이란도 아닌 경계에서 디아스포라를 경험한다. 그들은 자국의 가족들을 걱정하여 미국식 이름을 고수하면서도, 동시에 자국식 문화는 완전히 잊은 지 오래이다.


서구 제국주의 침공 이전, 다소 유연하게 해석되던 이슬람 내 여성 및 동성애 관련 법규들은 서구 열강에 의해 보수화된다. 그들은 이슬람 세계에 여성 해방을 촉진시킨 게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의 젠더 체계에 이슬람 여성들을 편입시켰을 뿐이다. 젠더 체계는 이데올로기적·정치적 기반 위에서 작동하므로, 서구 사상에 근거한 유럽식 여성 해방은 필연적으로 이슬람 규범과의 대립을 낳아 민주주의를 지연시킬 뿐이다.


강자의 폭압은 국가 간 제국주의 형태로만 발생하는가. 국가의 감시체제를 상징하는 CCTV는 정작 국민의 안전이 위협받을 때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영상은 너무 많은 반면, 그 영상을 관리할 사람은 터무니없이 적기 때문이다. '폭동' 이 일어나면 정치인들은 으레 폭동 연루자들을 '타자' 로 규정하고 그들에 대한 억압을 가한다. 기록이 없으면 그들에 대한 경찰범죄는 폭동 진압으로써 당연해진다. 그러나 기록은 공유를 통한 연대로써 힘을 발휘하게 된다.


이런 복잡다단한 갈등으로 이루어진 삶 속에서 인간은 환상을 노래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런 세계 속에서 약자에 손을 뻗는다고 세상이 변하긴 할까. 물론 동물과 같은 이 세계 소수자를 구한다고 해서 세상이 변하진 않는다. 그러나 내가 손을 뻗으면 그의 삶이 온전히 바뀔 수 있으며, 그에 따라 내 인생 또한 바뀔 수 있다.


새벽 내내 읽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9월호. 이번 호는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가 현대까지 어떤 영향을 끼쳐왔는가라는 주제로 관통하여 설명하고자 하는 듯하다.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늘 그렇듯 미처 알지 못했던 사안들과 국내에선 접해보지 못할 관점들을 접하는 게 즐겁고, 각 이슈를 선별하기 위한 고민 과정이 궁금하다.


르몽드코리아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INSTAGRAM @hppvlt

https://www.instagram.com/hppvlt/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앞에 놓인 무한한 날들을 개척해 나가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