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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R Sep 11. 2023

단 한 사람의 삶을 선택해야 한다면

책 <단 한 사람>, 최진영 저


자기 전에 읽었는데 기분이 좀 묘하다. 한겨레출판에서 가제본으로 전체 분량의 1/3 정도만 보내주셔서 뒷 내용이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프롤로그가 너무 묘했고 이후 이어지는 이야기가 프롤로그와 맞닿아 있는 것 같기에 생각을 좀 정리해보고자 한다.


프롤로그. 작은 섬, 작은 새들이 작은 열매를 먹고 산다. 섬은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그 섬에는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두 나무가 있다. 따로 태어났으나 언제나 함께이길, 언젠가 하나가 되기를 원한다. "나의 꽃과 너의 꽃이 구분될 수 없을 만큼." 그러나 이는 나와 너의 삶이 고유해야 궁극적으로 살아 남을 수 있다는 걸 모르는 말인 듯하다. 모진 삶의 풍파 속에 나무는 그루터기만 남는다. 그리고 다시 성장할 날을 기다린다. 몸통은 잘려나갔지만 줄기는 단단하게 서로를 지탱해주고 있기에 다시 자랄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본장. 신복일과 장미수에게는 다섯 아이들이 있다. 일화, 월화, 금화, 목화, 목수. 이름에서도 보이듯 일화와 월화는 해와 달 같은 아이들이다. 생명력이 넘치고 어디서든 빛난다. 그러나 일화와 월화가 사는 환경은 그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일화는 자신의 한계를 긋고 노력을 비웃는 이들에게 증명해 내기 위해 자기 삶을 갉아먹듯 불태운다. 월화는 자신의 뒤에서 펼쳐지는 밤의 무성한 소문을 증명하듯 화려한 빛을 내보인다. 두 아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삶에서 빛을 내고 삶이 주는 열매를 취하고자 한다.


금화는 그런 일화와 월화의 동생이다. 언니들의 빛에 가린 것도 모자라 나이 차이 얼마 나지 않게 태어난 이란성쌍둥이 목화, 목수의 영향으로 부모의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산 듯하다. 금화는 언제나 목화, 목수와 함께 하고 싶어 하나, 목화와 목수는 '우리' 와 금화는 다르다고 선을 긋고 금화로서는 그 말이 내심 섭섭하다.


이야기는 그런 금화가 실종된 이후, '능력' 이 발현되어 고통받는 목화의 이야기다. 아니 어쩌면 목화로 이어진 미수와 천자의 이야기. 금화가 사라진 후 목화는 언젠가부터 꿈을 꾸기 시작한다. 그 꿈속에선 무수히 많은 이들이 죽어가고, 그 속에서 자신은 '단 한 사람' 만을 살릴 수 있다. 단 한 사람을 살리자고 다른 많은 이들의 죽음을 눈 감아야 하다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지 목화는 이해할 수 없다. 이왕 살릴 거면 사라진 금화를 찾아 살려내고 싶다.


금화. 땅을 나타내는 듯한 이름이다. 땅, 대지, 흙. 금화가 사라지던 날, 금화가 거대한 나무에 깔리고, 목수가 금화를 구하려다 함께 깔리고, 목수가 구조된 현장에서 금화는 연기 같이 사라졌었다. 나는 어쩌면 목수의 삶이 금화의 죽음을 딛고, 그 토양 위에서 살아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은 나무와 꽃이, 다음 나무와 꽃의 거름이 되듯이. 목수의 이름을 바꿔 말하면 수목. 수목樹木 살아 있는 나무, 수목壽木 인간의 삶. 어쩌면 단 한 사람만 살릴 수밖에 없는 순간, 누군가 금화가 아닌 목수를 살리고, 금화는 죽음을 통해 흙으로 되돌아간 것이 아닐까.


누군가 금화가 아닌 목수의 삶을 살리기로 결정을 내림으로써 목수가 살아나고, 이후 목화도 함께 살아난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목수와 목화, 나무와 꽃은 한 몸에서 비롯되나 한 몸이 아니다. 나무는 흙을 자양분으로 꽃을 피워내지만, 꽃은 영원히 피어 있지 않다. "영원한 건 오늘뿐이고, 세상은 지금으로 가득" 할 뿐이다. 꽃은 현재를 살기 위해 투쟁해야만 하고, 그 꽃의 투쟁은 이름에서부터 장미가 떠오르는 엄마 장미수의 삶과 이어진다.


책의 소개글에 "나뭇잎 한 장만큼을 빌려 단 한 사람씩만 구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의 일" 이란 말이 있었다. 무수한 죽음 속에서 단 하나의 생명밖에 살릴 수 없는 인간의 유한성을 보여주면서도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한 사람의 영웅성을 보여주는 듯하다. 더불어 단 한 사람의 손길과 눈길만 있어도, 그것만으로도 한 사람의 삶이 지속되기에 충분함을, 그렇게 삶이라는 숲에서 초록 잎들이 무성하게 번져나갈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며.


하니포터, 한겨레출판으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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