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나 해러웨이는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를 통해서 생물학을 위시하는 근대 자연과학이 주장하는 '객관성' 의 허구와, 그 신화가 체현된 영장류 실험의 진실을 밝히고, 이에 대응하는 대안으로 '사이보그로의 정체성 선언' 을 주장한다.
과학은 문화이다
근대 이후 과학은 가설, 실험, 결과라는 과정을 통해 획득되는 자신의 객관성을 당연시한다. 그러나 저자는 그들이 보여주는 일련의 과정이 하나의 기호에 불과하며 그 이면에는 과학자 개인이 살아온 환경과 문화가 스며들어 있음을, 그것이 객관성의 이름으로 영장류를 비롯한 동물과 여성들의 신체를 무차별적으로 자신들의 이념을 구현할 정치의 장으로 만들어 왔음을 폭로한다. 영장류를 이용한 실험은 당대의 사회 및 문화가 인간 사회에서 알고자 하는 의구심을 해결하는 목적에서 비롯되었고, 일견 "동물 세계에서도 그러네!" 라는 말이 나올 만큼 자연스러워 보이는 실험 결과들은 사실 당대 이념 체계에 의해 설계되고 구현된 결과물에 불과했다. 그 이념 체계는 프로이트 및 진화론에서 비롯된 서구 남성/남근중심주의적 세계관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이후 국가사회주의, (군사주의적·가부장제적) 자본주의와 결합하여 수많은 영장류와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고 실험하고 차별하기에 이른다.
'우리' 와 '그들' 이라는 폭력적인 이분법은 나와 다른 존재를 타자로 낙인찍는 것을 정당화한다. 타자는 언제나 '괴물' 로 정의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괴물의 존재는 언제나 공동체의 한계를 드러낸다. 동물, 여성, 켄타우로스, 아마존, …, 그리스시대 폴리스로부터 비롯되는 서구의 남성중심적 세계관은 조화로운 세계를 만든다는 명분으로 타자를 배척하고 식민화한다. 이에 저자는 이러한 폭력적 이분법과 남성 지배하의 조화로운 존재에서 탈피하고자 스스로 "여신이기보다는 사이보그가 되겠다" 선언한다. 근본 없고, 경건하지도 않은, 온갖 정체성이 이종교합 상태로 복잡다단하게 엮인 사이보그. 그 사이보그로의 선언 속에서, 끊임없이 읽고 쓰며 자신을 둘러싼 이 세계의 한계를 드러내고 신화를 벗겨내며 또 다른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원래 평소에는 출퇴근할 때 오디오북을 들으며 운전하는 편인데, 다른 책도 읽어야 하긴 했지만, 특히 이 책을 읽느라 몇 주간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하하. 얼마 전 르몽드지에서 읽은 마녀사냥 편이 떠올라 그때 읽은 걸 곱씹으려 읽었고, 더불어 여성학적 측면에서 지금 보고 있는 드라마를 조금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사실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았는데, 그럼에도 영장류에 대한 논의에서 사이보그 논의로의 전환이 굉장히 흥미로웠고, 이후 도나 해러웨이에 대한 저서를 또 만나게 된다면 배경지식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