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독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R Oct 30. 2023

삶 속으로 사라지고자 하는 이의 어떤 여정

책 <타국에서의 일 년>, 이창래 저


주인공 틸러는 백인 청년이다. 아시안의 피가 한 방울 섞여 있다고는 하나 그게 무슨 대수랴, 그의 외관으로는 그 누구도 그의 인종 정체성을 파악하지 못할 정도이며, 틸러 또한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는 부유한 백인 동네인 던바 출신이다. 어머니의 가출 후 틸러는 던바에서 아버지와 단 둘이 살았고, 대기업 관리직인 아버지 덕분에 동네 친구들만큼 유복하게 살지는 못하더라도 그냥저냥 만족하며 살곤 했었다.


그러나 바로 그런 삶이 틸러 자신을 부유하는 삶을 산다 생각하게 만든 건지도 모른다. 더불어 어머니의 가출은 무의식적으로 빈자리를 느끼게 만들었고, 그렇게 틸러는 채워지지 못할 결핍을 안은 채 현실에 발 딛지 못한 부유하는 삶을 살았다.


그런 틸러는 사업가 퐁을 만난다. 그는 자수성가한 아시아계 사업가로, 틸러와 다르게 어쩌면 소수자로서의 자신의 정체성과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산 사람일지도 모른다. 틸러는 퐁을 따라 아시아로 사업 여행을 떠난다. 타국으로 떠난 일 년 간 틸러는 인생의 황홀경 및 쓴맛을 두루 경험한다. 그는 왜 퐁과 함께 여행을 떠났던 걸까. 어쩌면 평범한, 너무도 평범한 삶을 부유하는 것에 지쳐 자신을 다른 이와 다르게 만드는 어떤 한 방울을 쫓아 퐁을 따라나섰던 건지도 모르겠다.


여행의 끝에 공항에서 틸러는 밸을 만나고, 그녀와 그녀의 아들과 함께 은둔 아닌 은둔 생활을 하게 된다. 밸은 남편의 범죄를 연방 정부에 고발하여 목격자 보호를 받고 있는 사람이었다. 밸의 아들은 전 남편의 이름을 딴 빅터 주니어. 틸러는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이 행복하다. 여행 이전 미숙하고 방황하는 청년에 불과했던 그는 '타국에서의 일 년' 을 보낸 이후, 밸을 만난 이후, 자신이 직면하며 살 삶을 선택하고 정착하며 밸과 빅터 주니어를 지켜준다.


나는 삶으로부터 사라지는 게 아니라,
삶 속으로 사라지고 싶었다



영미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 중 이창래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가 7년을 집필했다는 작품. 감정의 끝단까지 파고 들어가는 예리한 묘사에 어떻게 이런 표현을 쓰지 싶어서 감탄하곤 했다.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도 끝내 삶을 살아내고 싶다는 의지가 담긴 어구가 인상적이어서 가제본 서평단을 신청했었다. 가제본 서평단이라 해서 작품의 일부만 보내주실 줄 알았는데, 알에이치케이코리아에서 전체 이야기를 감상할 수 있도록 보내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RHK코리아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INSTAGRAM @hppvlt

https://instagram.com/hppvlt/


매거진의 이전글 시린 겨울을 지나, 그리고 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