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계간지 <마니에르 드 부아르> 13호
"권력이란 물리적 힘의 행사가 아닌 독점과 배제를 행하는 언설의 작동으로, 폭력이 언어로 구현된다. (미셸 푸코)"
인쇄술과 함께 하는 문명의 발달은 국가 간 불평등을 심화시켰고, 제국주의의 팽창은 단일언어 확장을 가속화시켰다. 실용주의를 기조로 한 국제어 사용 풍조는 "누구를 중심으로 한 실용주의인가, 왜 그들을 위해 그들의 언어를 따라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가리고, 신자유주의 체제에 따라 자본과 지배자의 언어인 영어가 각국의 모국어를 위협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영국은 EU를 탈퇴했으나 독일어와 프랑스어가 절대다수의 모국어인 유럽연합 티비 토론회에서는 영어를 통해 유럽의 비전을 이야기한다.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나라 국민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야기가 가능하기는 한가?
혹자는 영어로의 단일언어화는 다언어주의보다 비용이 '덜 드는' 것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간과되고 있는 점은 영어만 사용하는 것이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따르는 기업에만 유리할 뿐, 여러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다언어를 사용하는 유럽이라 할지라도 모든 분야에서 정교한 사고 과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 모국어의 능력은 결코 따라잡을 수 없으며, 정책적으로 다중 언어를 장려하는 국가의 경우 필연적으로 학생들의 학업 성취 저하가 발생한다. 통번역·출판·교육 등의 영역에서 영국의 특권적 지위만 공고히 할 뿐이다.
한편, 영어의 세계화를 경계하는 흐름 속에서 프랑스어권 (과거) 식민지들은 정치적인 이유로 영어 사용을 택한다. 특히 식민지 시대 피지배국의 위치에 있던 아프리카 대륙은 제국의 언어인 프랑스에 대항해 대안 언어로서의 영어를 채택하는 경우도 있다. 더불어 젤렌스키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정치인들은 제국의 언어인 러시아어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우크라이나어를 강제하며,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어권 화자들에게 불이익을 감내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역사적으로 제국의 언어는 영어, 러시아어뿐만 아니라 아랍어, 중국어, 로마 문자 체계의 논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의 경어 구어가 아닌 한자라는 문자 체계를 통해 국가 통합을 이루었다. 이는 엘리트적일 수밖에 없었고, 근대 이후 하나의 문자 체계에 다양한 구어 체계의 혼용을 감수했으나, 최근 미디어의 성장과 함께 보통화를 중심으로 한 구어의 통합 또한 이루고자 한다. 더불어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병음(핀인) 표기를 위한 서구 로마자 체계를 도입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언어 통합' 은 순기능만 존재할까? 민주주의는 다언어주의에 기반한다는 사실에 비추어 봤을 때 결코 긍정적으로만은 볼 수 없다.
다양한 국가의 이해관계를 조율한 결괏값으로서의 국제법이 특정 언어들을 중심으로 기술된다는 것은 모종의 불평등을 함의한다. 특히 어떤 언어를 사용할 것인가에서부터 국가 간 힘의 논리가 작용하고, 그 언어를 중심으로 하는 논의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불어 가장 비판적이고 분석적인 사고능력을 벼려야 하는 고등교육기관인 한 나라에서 대학에서조차 '영어 전용 수업' 을 진행한다는 사실은 필연적으로 여러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
이번 편의 말미에서는 코리안학과 코리안어를 이야기하는 프랑스 학자들의 견해를 이야기하며 마무리된다. '한국학' 과 '한국어' 가 아닌 '코리안학' 과 '코리안어' 라고 지칭되는 이유는 <코리안> 이 한국만의 전통과 언어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전통과 언어 또한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코리아 자체에 대한 학문을 구축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으며, 이는 결코 코리안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르몽드코리아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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