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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R Nov 29. 2023

누구를 위한 가난인가

책 <미국이 만든 가난>, 매슈 데즈먼드 저


약 백육십여 년 전 미국이 남과 북으로 갈라져 내전을 벌이던 혼란의 시대. 북부의 수장이었던 에이브러험 링컨은 게티즈버그에 모인 이들 앞에서 자신이 꿈꾸는 국가의 기틀과 미래를 이야기한다. 그의 이면이 어떠하든 연설은 많은 이들을 감화시켜 전쟁을 북부의 승리로 돌아가게 만들었고,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으리라.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 라는 그의 말은 세월을 넘어 21세기 민주주의를 살아내는 이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말이 되었다.


그렇다면 그렇게 지켜낸 미국은 진정으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가로서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 맞는가? 정치인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그러한 이상국가를 만들기 위한 장애물로 다양한 사회 갈등을 지목하나, 정작 <가난> 은 모른 체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신자유주의 시대 자본과 결탁한 위정자들은 자신들의 거짓말을 가리기 위해 허울로써 그때 그 게티즈버그에서의 말을 이용하나 진짜 문제의 원인을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은 미미해 보이기만 한다.


그러나 책 <미국이 만든 가난> 은 비단 입발린 소리만을 늘어놓는 위정자만을 겨냥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들이 돌림노래인양 이야기하는 시스템의 문제 이면, 즉 진짜 '미국의 가난' 을 만드는 이들이 누구인가를 지목하는 글이다. 그리고 그 화살은 책을 읽고 있는 "우리" 에게 향한다.


이 책은 질 낮은 일자리, 업무 외주화, 기술 진보에 따른 착취, 기업 로비, 노조 가입 불가, 수수료 및 고금리 소액 대출 등의 여러 복합적 요인을 통해 사회가 가난한 사람들을 어떻게 착취하는지를 자세히 설명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추상화가 아닌 현실 속 우리가 행하는 착취에 반대할 것을 주장한다. 노동자의 주거 및 금융 착취를 중단해야 그들의 삶에 가해지는 신체적, 재정적, 정신적 충격을 없앨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제로섬 게임과 다름없는 정부 원조, 새는 바가지와 다름없는 복지 시스템. 국가의 발전과 함께 진보해 온 여러 사회 보장 시스템이 왜 가난한 이들에게 향하지 않는지를 함께 고민할 것을 요구한다.


결국 미국이 만든 가난은 곧 미국인이 만든 가난이며, 이는 곧 "우리" 가 만든 가난이다. 미국의 가난Poverty of America 을 이야기하며 미국이 만든 가난Poverty by America 을 모른 체하는 건 얼마나 모순적인가. 충분한 돈이 없고 충분한 선택지가 없는 이들. "우리" 는 그 점을 이용해서 그들을 착취하고, 그들에게서 착취한 부를 "우리" 의 부를 축적하는데 이용한다는 점을 이 책은 끊임없이 지적한다. 그렇게 다른 이의 삶을 짓밟고 올라선 삶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자유와 평등을 기조로 정치적 내전을 잠재우며 기틀을 다진 나라는 다시 한번 '가난' 이라는 거대한 내전 속에 휩싸인다. 높아진 경제력과 생산물만큼 인간의 욕망도 커져왔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 욕망에 매몰된 나머지 시스템 속 약자들이 온전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한 진보는 요원하기만 하고, 이에 따라 끊임없이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아르테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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