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독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R Dec 16. 2023

궤도를 만드는 세상, 그 궤도를 이탈한 이들에게

책 <총은 총을 부르고 꽃은 꽃을 부르고>, 이다혜 이주현 인권위원회 저


<총은 총을 부르고 꽃은 꽃을 부르고>, 열 편의 인권영화에 관한 책. 청년, 학교, K팝, 노인, 엘리트체육, 장애인, 고독사, 군대 등 사회 내 갈등과 균열의 원인이라고 일컫어지는 소수자들을 다룬 영화를 이야기하는 작품이고, 이들이 문제로 치부되게끔 만드는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를 함께 고민하자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인상적이었던 장, "왜 '장애인 흉내' 를 내는 것에 박수치는가." 몇 년 전 좋아하는 배우 에디 레드메인이 영화 <사랑에 대한 모든 것> 으로 각종 시상식을 휩쓸었던 적이 있었다. 그가 연기한 인물은 유명한 스티븐 호킹 박사였는데 당시 영국 현지 가디언지에서는 "우리는 '흑인 흉내' 를 내는 배우는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왜 '장애인 흉내' 를 내는 것에는 박수 치는가?" 라는 비판적 논조의 칼럼이 실렸었다고 한다. (나중에 이 분의 칼럼을 찾아 읽고 싶어서 '프란시스 라이언' 이라는 이름을 기록해 두었다.)



"[...] 그들은 진짜 그 (소수자적) 특성을 가진 이들로부터 직업을 빼앗아가고, 그렇게 함으로써, 영화산업에서 이들 집단이 과소대표 되는 현실을 영속화한다. [...] 대중문화는 장애를 실제 사람에게 벌어질 수 있는 일로 여기기보다는 하나의 은유로 받아들이는 데에 관심이 있다."



"장애를 뛰어넘어, 장애에도 불구하고" 라는 수식어를 남발하는 대중문화는 갖가지 이유로 너무나 손쉽게 사회 속 장애인이 위치할 수 있는 자리를 지워버린다. 제작 과정이 수월하고 비용이 덜 든다는 이유로, 비장애인 배우의 연기력을 뽐낼 기회로 만들기 위해, 장애인을 동정할 수 있는 기회로 만들기 위해, 그리고 그것이 '진짜' 현실이 아닌 영화 속 주인공이 넘어야 할 장애물임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줄 기회로 보여주기 위해.


더불어 대중문화는 장애인을 비장애인의 무료한 삶에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로 기능하게 만들고, 장애가 주인공이 극복해야 하는 방해물이 아니라 영화가 끝나도 계속 살아가야 하는 현실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만든다. 앞서 언급한 칼럼을 비롯한 책은 이 점을 언급하며 살아있는 이들의 삶을 실체가 아닌 은유로 표현하는 것의 문제점을 꼬집는다.


무엇이 주류고 정상인지를 규정하는 궤도를 만드는 세상. 그 궤도에 서는 것만이 진정한 삶인지, 궤도를 이탈한 이들에게 손을 내밀 수는 없는 건지, 무수한 질문이 머릿속을 맴돈다.


하니포터, 한겨레출판으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INSTAGRAM @hppvlt

https://instagram.com/hppvlt/

매거진의 이전글 공단과 구디 사이에서 발견한 한국 사회의 내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