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로에서 시작하는 자본론>, 사이토 고헤이 저
<제로에서 시작하는 자본론> 은 지금, 여기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왜 다시 자본론이 필요한가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자본론을 읽어보지 않은 초심자부터 이해할 수 있도록 아주 친절하고 쉬운 설명으로 쓰인 이 책은 코로나 시대 이후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와닿을 법한 일상과 밀접한 예시를 풍부하게 들어 이해를 돕는다.
영화 <매트릭스> 속 주인공은 빨간 약과 파란 약의 선택 속에서 갈등한다. 고통스럽지만 진실을 담보하는 빨간 약, 표면상의 질서 속에서 안온한 현재를 의미하는 파란 약. 주인공 네오는 기꺼이 빨간 약을 택하고, 그 뒤 그의 삶은 전과 다른 새로운 차원의 세계로 열린다. 그러나 네오가 빨간 약과 파란 약의 선택 이전에, 빨간 약의 존재조차 몰랐다면? 이 책 <제로에서 시작하는 자본론> 에서도 빨간 약과 유사한 '빨간 글씨' 의 이야기가 나온다. 사회주의를 비판하기 위한 농담 속에서 빨간 글씨는 현실을 들여다보는 하나의 렌즈가 된다. 그러나 그 렌즈가 존재하는지 조차 모르게 된다면?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틀 하나를 잃게 되는 것과 다름없다.
책은 모든 것이 울타리 치기와 함께 시작된다고 이야기한다. 역사 속 모든 것을 함께 공유하며 살아가던 인간은 잉여생산물의 등장과 함께 강자의 논리에 따른 울타리 치기를 시작한다. 자본주의와 함께 가속화된 울타리 치기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더 철저하고 은밀하게 개인의 삶 속에 파고들고, 효율적인 '분업' 시스템은 개인을 기계의 부품과 다름없는 존재로 전락시킨다. 기업 정신을 위시한 자본가의 마인드를 내재화한 개인은 자유롭다 착각하며 더욱더 자본에 자신의 몸을 묶기에 이르고, 결국 피로사회의 굴레로 자신을 내던지고 만다.
피로사회를 비롯한 한병철 교수님의 저서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주제가 배경지식이 되어 어렵지 않게 읽었던 것 같다. 다만 자본론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은 없었는데 입문의 물꼬를 튼 것 같아 만족스럽고, 특히 분업이 왜 인간소외로 이어지는가에 대한 단계적인 설명이 곁들여져 있어서 좋았다.
아르테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