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영화라는 매체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된 게 플라워 킬링 문을 보면서인 것 같다. 사실 작년에 나온 영화여서 뒷북치는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나는 보통 VOD로 나와야만 보는 사람이기에... (긁적)
여하튼 원작은 작가도 작가지만 내레이션 자체가 사건의 본질을 수사하는 FBI라는 백인 남성으로 이루어진 수사 집단의 관점에서 관찰·후술 하는 식으로 이루어지는데 논픽션의 형태를 취하기 때문에 읽는 사람은 전지전능한 위치에 있는 백인 남성의 서술에 수긍하면서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거장의 손에서 해체되고 다시 재조립된 영화 각색판은 작중 서술자와 실제 주요 인물을 분리시켰던 원작과는 다르게 처음부터 일체화시켜서 죄를 저지른 인간들 중 한 명의 시각으로 서술되는데, 특히 어니스트Ernest 라는 미숙하고 믿을 수 없는 화자의 입장에서 서술되어 원작과의 차이를 보인다.
어니스트는 탐욕이라는 아메리칸드림의 정수와도 다름없는 정신을 체현한 인물인데, 영화는 역설적이게도 그 탐욕이 태어나면서부터 절대악의 형태로 결정화된 게 아닌, '서서히' 물들어 마침내 그 정점에 이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를 보다 보면 계속 되뇌게 되는 질문,
무엇이 야만인가
초기 자본주의의 원동력이었던 노동으로 축적한 부를 통해 구원받으리란 프로테스탄티즘의 원류가 대항해시대 가톨릭의 폭력적 선교 활동과 다르지 않음을, 시대가 변해도 계속해서 다른 모습으로 비기독교 문명을 억압하고 착취함을 보여준다.
작중 백인들은 너무도 당연하게 오세이지 족의 돈을 갈취하는 걸 정당화하는데 여기에는 하나님의 소명을 받고 노동하여 돈을 버는 우리와 달리 '너희' 는 그 모든 것을 누릴 '자격' 이 없는 야만인이라는 시각이 내포되어 있다.
실제로 영화 속 백인이 오세이지족을 향해 "야만인savage" 이라고 절규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영화는 그 장면 직후 오세이지족이 소유한 부를 갈취하기 위해 석유를 뒤집어쓴 백인들을 보여준다.
오세이지족을 향해 끊임없이 야만인이라고 외치는 백인들, 물질적 우위를 점했음에도 실질적으론 백인들의 꼭두각시에 불과한 신세를 면하지 못하는 부족민들, "오세이지족은 50세를 넘기는 경우가 없다" 라는 기묘한 신화 속에서 부족민들은 그 신화를 의심하면서도 진실을 입증할 방법이 없기에 무력하기만 하다.
작품은 오세이지족이 느끼는 무력감의 원인이 날강도와 같은 백인 개인들에게 국한된 것이 아닌 당대 오클라호마 주 차원에서 비롯되었음을 고발하는데 실제로 (백인) 주 정부는 후견인 제도와 같은 사회 제도로 오세이지 부족과 백인들 간의 '위계' 를 제도화한다. 더불어 영화 내내 오세이지 족은 자신들만의 사적인 이야기를 할 때를 제외하고는 공적 공간에서는 내내 영어로 이야기하는데 이는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법적·제도적 사회 전반의 판 자체가 백인들을 중심으로 짜였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결정적으로 부족민들이 겪은 각종 의문사가 모두 미수사로 종결되었다는 것 자체가 '진짜 범죄' 를 감추는 주 정부의 공모를 보여주는 거라 생각한다.
작품은 거시적으로 촘촘하게 설계된 제도적 악과 미시적으로 무지에서 비롯된 개인적 악을 함께 보여주나 두 종류의 악은 너무도 밀접하게 뒤엉켜 있어 누구도 쉽게 구분할 수 없다. 더불어 오세이지족 출신 여성들을 아내로서 전리품인양 소개하고, 은밀하게 독살하고, 그들의 재산을 갈취해 왔단 점에서 지독하게 인종차별적이면서 또한 지독하게 여성혐오적인 사건이기도 하다.
비록 전반적으로는 1인칭 서술자의 시점으로 이루어지나 중간중간 저널리즘의 성격을 띠는 흑백 장면들이 삽입된다. 그 순간 관객은 서사에서 분리되어 작중 오세이지족이 겪고 있는 그 모든 불합리한 비극의 전조와 결말이 어떠했는지, 백인들의 횡포를 겪었다는 점에서 오세이지족의 삶과 평행을 이룬 흑인들이 겪은 비극은 어떠했는지를 목격하게 되고, 그 시절의 유색인종을 겨냥한 혐오와 공모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함을 인식시킨다.
실제로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스콜쎄시 감독은 택시 드라이버, 갱스 오브 뉴욕,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아이리시 맨을 통해 아메리칸드림의 이면, 즉 '꿈' 을 이루기 위해 짓밟힌 무수한 삶과 흩뿌려진 피의 실체를 재현해 온 감독이라 일컫어진다. 다만 이번 작품이 전작들과 다른 점이라 전작들은 주로 백인 남성 위주의 서사가 중심인 반면 이번 작품은 감독의 자전적 반성에 따라 역사 속에서 희생되어 온 이들의 목소리를 수면 위로 떠올리게 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