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정말 재밌다. 개인적으로는 영상에서 언급된 "나는 나야, 나는 특별해" 라고 외치는 자기중심주의가 이블린과 조이로 이어지나, 조이로 대변되는 인터넷 세대의 문제는 "개개인의 의미와 가치가 작아져서" 라는 점도 일리가 있지만 자아가 너무 비대해져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블린의 세대는 자신의 특별함을 과시하면서도 어쨌거나 사회 속에서 타자와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하는 세대였다. 그러나 조이로 대변되는 인터넷 세대는 기술의 발전과 세계화의 영향으로 원한다면 얼마든지 전 세계와 소통할 수 있지만, 동시에 '화면만' 뚫어져라 쳐다보느라 정작 실존하는 내 옆의 존재에 대해 관심을 기울일 시간이 없다. 아니 어쩌면, 의식적으로 시간을 가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는 스마트폰의 발달과 함께 더욱 가속화된다.
자아는 사회 속에서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형성될 수 있는데 자꾸만 타인의 모습을 가장한 자기 자신만 들여다보고 있으니 나르시시즘에 빠지게 된다. 나르시시스트인 자아는 그 부피를 늘려가 점점 비대해지지만, 실제 내 존재의 대척에 있는 타자는 위협 요소로 받아들이게 되었을지도.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다는 어떤 노래의 가사처럼 자아가 너무 비대해진 나머지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여유는 사라진다. 나'와and' 당신 (함께, 공존) 의 관계가 아닌 나 '아니면or' 당신 (둘 중 하나) 의 논리에 빠져 존재 가치를 끊임없이 비교하게 되고, 그런 과정 속에서 현실 속 자신이 꿈꿔 오던 이상적 자아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사실 작품을 의도하고 본 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우연히 보았다가, 정말 뜬금없을지도 모르지만 ··· "밖으로 나가자" 라는 생각을 했었다. 브런치에도 적었었는데 누군가가 그랬거든. 언어의 불완전성 때문에 내가 가진 생각, 내가 말하고 싶은 것, 내가 말하고 있다고 믿는 것, 내가 실제로 말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불일치할 수밖에 없다고. 나와 타인의 물리적 거리가 1센티미터가 채 되지 않더라도 머릿속에 있는 내 모든 생각을 보여주려는 순간 그 거리는 1억 광년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어려움을 인지하고도 인간은 소통하고자 노력할 수 있다. 나와 다른 사람을 보더라도 조롱하지 않고 관용의 시선으로 포용할 수 있으려면 집 밖으로, 방 밖으로, 그리고 화면 밖으로 나가야 하는 거겠지.
수많은 메타버스,
그 모든 곳에 그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해내어
영원히 얻어내고 싶은 것은
사실 지금, 현재 내 곁에 있는 이를 이해하기 위한 수많은 배경,
그리고 그 사람과 함께 하는 찰나의 순간일지도 모른다.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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