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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R Mar 26. 2023

고요함과 다정함이라는 포장 속에서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The Banshees of Inisherin)>

누군가의 다정함은 어쩌면 다른 누군가에게는 무례함이자 폭력으로 다가올 수 있다. 더 이상 다가오면 손가락을 잘라버리겠다는 엄포에는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니 침범하지 말아 달라는 결연한 마음의 표현이지 않겠나. 어쩌면 우리가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으리란 생각은 자의식에 가득 찬 오만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적 알레고리의 가능성을 차치하고 작품 내적인 둘의 관계만 보았을 때) 삶에 위대하고 깊은 뜻이 있으리라 생각하면서도 '지금, 현재' 곁에 있는 사람의 다정함을 무시하고 뒷전으로 취급하는 게 조금 서글프다.


사실 다정함이란 우아하게 헤엄치는 백조가 물속에서 끊임없이 행하는 발길질처럼 의식적이고 끊임없는 노력이지 않을까. 실존이란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내 삶에 관한 것인데, 17세기 음악으로 표상되는 이미 지난 시대를 이상화하고 아직 오지 않은 삶의 클라이맥스만을 그리며 사는 건 그저 '현재에 대한 거부' 로 여겨질 뿐이다.


영화 속 총성이 들리지 않은지 꽤 되었다는 소리에 조만간 또 시작되지 않겠느냐는 대답. 총성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며 총성은 왜 또다시 시작된다는 걸까. 우리는 사는 동안 끊임없이 인생의 부조리함에 관해 고민하고 흔들리며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괴로워하곤 한다. 그러나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그 과정 속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 곁에 있는 사람에게 상처 입힐 수도 있다는 것. 곁에 있는 사람들의 다정함을 당연시 여기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닐까.


서로에게 다정했던 관계는 이제 언제 다시 싸워도 이상하지 않을 관계로 변질되었다. 고요함과 다정함이라는 언제 뜯겨도 이상하지 않을 포장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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