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영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R Mar 26. 2023

"너는 내 꿈이야, 세상을 다 가져라."

드라마 <태양의 여자>

‘어찌하여 앞길이 보이지 않게 사방을 에워싸 버리시고는 생명을 주시는가’

구약성서 욥기 3장 20~23절



언젠가 문득, 사랑받으며 사는 사람들에게선 빛이 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들은 밝은 기운과 자신감이 가득해 슬픔이나 절망에 대한 면역력도 강합니다. 따라서 잘 웃고, 세상을 낙관하고, 안 좋은 일이 닥쳐도 금방 회복합니다. 사랑의 힘은 정말 놀라운 것이죠. 하지만 세상엔 양지만큼이나 넓은 그늘도 있어 질투와 시기와 음모가 삽니다. 탐나는 그 햇빛을 어쩌면 좋을까요.
ㅡ  드라마 <태양의 여자> 기획의도 중에서


"너는 내 꿈이야. 세상을 다 가져라."

부유한 교수 부부의 무남독녀 외동딸로 대한민국 대학생들이 선망하는 인물 1위인 인기 아나운서 신도영은 자신이 살면서 누려왔던 것을 베풀겠다는 마음에서 <원더우먼 쇼> 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남부러울 것 없는 신도영의 인생에 결핍된 것이 있다면 그건 부모의 사랑인데 어린 시절 교수 부부의 친딸을 '잃어버린' 죄로 인해 도영은 엄마 최정희의 온갖 멸시와 핍박을 감내한다.


사실 도영은 교수 부부의 입양된 딸이었고, 부부는 처음 도영을 데려왔을 때와 달리 동생 지영이 태어난 이후로 계속 도영을 학대하고 방임한다.


악역이 주인공인 드라마의 대명사 <태양의 자>. 유튜브에 클립 영상이 올라오지 않았을까 싶어서 검색을 해봤는데 요약된 영상만 올라와 있다. 다만, 영상에서는 도영이 친딸인 지영이 그냥 단순히 미워서 버리는 것처럼 나오는데 그럼 또 할 말이 많아진다. 난 아직도 누군가가 지영을 버렸다는 이유로 신도영을 비난하면 속이 상하는데 도영이 지영의 손을 이끌고 서울역으로 가기 전까지의 장면이 너무 안타까워서. 지영이 태어난 이후 도영은 지영의 언니가 아닌 보모로서의 삶을 살았다. 지영이 다치기라도 하면 그날은 최정희의 매타작에 도영의 뺨이 남아나지 않는 날이었다. 그리고 지영은 그걸 알고 있었다. 중요한 과제를 두고 있는 도영에게 지영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놀아주지 않으면 엄마에게 이를 거고 그럼 '너' 또 맞는다?" 라는 말을 의기양양하게 내뱉는다. 이에 발끈한 도영이 지영의 손을 끌고 서울역으로 갔던 거였고, 그날 자신의 행동에 자신이 놀라 다시 동생을 데리러 갔지만 지영은 사라진 뒤였다.




부모를 잃고 고통스러웠을 지난 지영의 인생을 누가 보상해 주겠느냐는 말에는 공감이 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 신도영을 악인이라 규정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한 사람의 영혼을 산산조각 내어 놓고 왜 부서진 창으로 세상을 보느냐고 이야기하는 건 참 슬픈 일이다. "두 다리가 없는데 뛰고 싶은 마음을 받았고 날 부르는 집이 없는데 안방의 온기가 그리웠다" 라는 도영의 말은 죽는 순간까지 엄마 최정희의 따뜻한 '도영아' 라는 그 말 한마디가 그리웠음을 느끼게 한다.


도영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 하는 순간, 신도영의 인생에서 유일한 한줄기 빛이었던 차동우의 말은 따뜻한 말 한마디가 어떻게 한 사람의 영혼을 어루만질 수 있는가를 알 수 있게 한다.


"도영 씨, 어디쯤이에요? 차가 많이 막혀?"
"동우 씨 많이 기다렸어?"
"아니야, 시간 금방 갔어."
"나 어쩜 많이 늦을지도 몰라."
"편하게 와. 기다릴게."
"예매한 거 같이 못 볼지도 몰라."
"뭐가 문제야. 다음에 보면 되지"
"기다려 줄 거지."
"아, 그렇다니까. 편하게 와."



평생을 부모에게마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야 하고 자신의 잘못에 대한 변명을 덧붙여야 했던 신도영. 차동우는 도영이 말없이 늦어도 화를 내거나 타박하지 않는다. 오히려 도영이 오는 길에 겪었을지 모르는 어려움이 있었겠거니 짐작하고, 많이 기다리지 않았으니 편하게 오라는 이야기를 한다.


"오늘밤에 무서운 꿈 꾸면 전화해도 돼?"
"당연하지."
"고마워 동우 씨. 사랑하고 미안해. 너무 늦으면 기다리지 마."
" ··· 지금 무슨 소리야?"
"세상에서 동우 씨가 제일 따뜻한 사람이었어."
" ··· 지금 어디 가는 거야?"
"동우 씨 만나러. 이따 봐."



신도영에게 차동우는 어떤 존재였을까. 단순히 아픔을 보듬어주는 연인의 관계를 넘어, 어린 시절 이 행복이 끝날까 봐 두렵다며 엉엉 울던 어린 도영을 따뜻하게 감싸주던 '엄마' 최정희, 그리고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뒤에서 그림자처럼 지켜주던 친모 박영숙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신도영은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마음 편하게 발 딛고 머물 수 있는 안식처를 찾았다.





너는 내 꿈이야.
세상을 다 가져라.




세상에게 '주고' 싶어서 외쳤다는 구호는 어쩌면 일평생 사랑하는 이에게 '받고' 싶었던 사랑의 응축일지도 모른다.




INSTAGRAM @hppvlt

https://www.instagram.com/hppvlt/

매거진의 이전글 해방은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