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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R Apr 03. 2023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한 '당신과의 지금 이 순간'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각종 알레르기를 달고 사는 나는 항히스타민제를 복용할 때마다 모든 감각이 전원 차단 되는 경험을 한다.


주말에 볼 요량으로 <아바타 2> 와 <더 웨일> 을 구매했는데, 주말 내내 기분이 바닥을 친 상태였기에 더 웨일은 잠시 미뤄두었다. 보고 나면 우느라 주말을 다 날릴 것 같았다.


그래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를 다시 시청했다. 처음 볼 때와는 또 다른 느낌. 내 방구석에 이불 덮고 앉아 작은 모니터로 볼 때면, 늘 그렇듯 이런저런 생각이 함께 떠오른다. 울고 싶지 않아서 본 영화였는데 결국은 울게 되었다는 이야기.


https://brunch.co.kr/@hppvlt/46




거울, 베이글, 그리고 눈



영화는 동그란 거울 속 세 가족의 행복한 한때를 보여주며 시작한다.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한 줌의 시간' 은 이후 수많은 영수증에 둘러싸인 에블린의 모습으로 교체된다. 마치 전생과 같았던 행복했던 한 때는 삶의 고단함과 다름없을 무수한 영수증 더미에 의해 밀려나고, 지워진다. 그 와중에 조이는 엄마인 에블린에게 상처받고 멀어진다. 소통의 부재는 서로의 마음속에 씻을 수 없는 상처와 물리적 거리감을 만든다.



수많은 멀티버스 속의 삶과 비교했을 때 현재 에블린이 살고 있는 삶의 모습은 결코 만족스러운 삶은 아니다. 어쩌면 무수한 삶의 가능성 속에서 가장 최악의 삶을 살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알파 에블린이 키워낸 조부 투파키의 존재는 역설적으로 '최악의 삶' 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조부 투파키가 탄생한 멀티버스 속 조부의 엄마였던 알파 에블린은 최상의 능력치를 가지고 있었어도 딸과의 순간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 극한의 한계까지 치닫아 모든 삶의 가능성을 경험해 (베이글) 허무주의에 빠진 조부는 왜 많고 많은 에블린 중에 현 멀티버스의 에블린을 찾아온 걸까.



가족이 사라졌던 거울은 조부 투파키의 베이글과 겹친다. 그리고 이 텅 빈 베이글과 대조적인 장난감 눈알. 어쩌면 장난감 눈알은 베이글처럼 텅 빈 조이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다시 한번 너와 눈 맞추며 함께 있고 싶다는 에블린의 간절한 염원일지도 모른다.



극의 말미에서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엄마가 왜 지금, 이 순간 아무것도 아닌 나와 함께 있으려 하느냐는 딸의 말에 에블린은 한 줌의 시간일지언정 너와 함께 하는 그 시간을 소중히 할 거라는 말로 딸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이 장면에서 눈물이 터졌다.



이 영화가 각종 시상식을 휩쓸었다는 점이 기쁘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고, 한 줌일지언정 그들과의 시간을 귀하게 여기자고 말하는 따뜻한 영화. 내 삶의 중심에 무엇을 두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다시금 되새겨 주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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