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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R Apr 12. 2023

그럼에도 '추방당한 자' 는 세상에 빛을 돌려주었다

영화 <더 웨일(The Whale)>

[···] 책의 초반부엔 작중 화자인 이스마엘이 작은 어촌에서 퀴퀘크라는 남자와 한 침대에 누워 있다. 이스마엘과 퀴퀘크는 교회에 갔다가 배를 타고 출항하는데 배의 선장은 해적인 에이허브이다. 그는 다리 하나가 없고 어떤 고래에게 앙심을 품고 있다. 고래의 이름은 모비 딕 백 고래이다. 내용이 전개되면서 에이허브는 많은 난관에 직면한다. 그는 평생을 그 고래를 죽이는 데 바친다. 안타까운 일이다. 고래는 감정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불쌍하고 큰 짐승일 뿐. 에이허브도 참 가엾다. 그 고래만 죽이면 삶이 나아지리라 믿지만, 실상은 그에게 아무 도움이 안 될 테니까. 이 책을 읽으며 내 삶을 생각하게 됐다. [···]


극에서 소설 <모비 딕> 을 언급하는 장면이 굉장히 자주 나오는데 작품 전체가 모비 딕의 은유 같기도 하다. 찰리라는 인물이 모비 딕 속 에이허브 같아서. 에이허브가 죽음을 무릅쓰고 싸우던 고래 모비 딕은 과연 작중 무엇에 비유되었던 걸까. 아마도 연인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교회 공동체의 냉담, 자기 자신을 죽음의 순간으로 몰고 있는 폭식증과 그로 인한 질병, 자신을 "역겹다" 라고 표현하며 빛 아래 공동체에서 밀어내 어두컴컴한 빌라에서 은둔하게 만드는 사람들의 시선 등이 혼재된 어떤 무언가가 아니었을까.


찰리의 연인이었던 앨런은 동성애자란 이유로 속해 있던 가족이자 교회 공동체로부터 버림받고 추방당했었다. 찰리는 자신의 사랑으로 앨런의 상처가 치유될 거로 생각했지만 삶의 끝자락까지 성경을 보았던 걸 암시하는 장면에서 연인 간의 사랑으로는 충족시킬 수 없는 무언가가 앨런의 영혼을 갉아먹었든 듯하다. 그리고 그 여파는 찰리의 인생마저 좀 먹고 있었다.


찰리는 앨리의 삶의 모든 순간에 함께 하고 싶었지만 자의로 혹은 타의로 앨리를 떠나 있었던 모든 순간이 앨리에게 큰 상처로 남아 있었고, 앨리가 자신이 얼마나 빛나고 소중한 존재인지 모르는 게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아 모든 것이 죄스럽기만 하다. 앨런의 죽음 이후 찰리는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고립시켜 왔으나, 자의로 스스로를 고립시킨 자신과는 달리 타의로 (자신 때문에) 세상에 날을 세우고 마음의 문을 닫은 어린 자식이 안쓰럽기만 하다. 실제로 앨리는 친구 없이 각종 기행을 일삼으며 아빠에게 받은 상처에 대한 분노를 세상에 여과 없이 표출하고 있었다.


학생들에게 누구보다 진솔한 에세이를 쓰기를 강조하는 찰리는 다시 만난 앨리에게 또한 자신의 전 재산을 줄 테니 글을 써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권유를 한다. 아마도 글쓰기가 자기 치유의 한 방법인 걸 알고 있기에 그랬음이 분명해 보이는데, 아빠를 상처 주기 위해 휘트먼을 모욕하는 순간에도 딸이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표한 것에 기뻐하던 찰리. 사실 그 돈은 애초에 앨리를 위해 모은 돈이었는데, 의료보험까지 포기하고 자신의 삶을 희생하여 앨리의 앞으로의 삶을 위해 모아둔 돈이나 마찬가지였다.


작품의 말미에 나오지만, 찰리가 작중 내내 읊조리던 모비 딕과 관련된 구절들은 앨리의 에세이였다. 죽어가는 순간조차 앨리의 에세이를 경전처럼 외우고 있었던 건 떨어져 있음에도 늘 삶의 중심에 앨리가 있었음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진심을 알게 된 앨리가 울면서 '아빠' 라고 부르는 순간이 있었던 거겠지.


월요일에 집에 돌아와서 울적해서 봤는데 보면서 꽤 많이 울었던 것 같다. 어쩌면 이야기 자체는 복잡하지 않다. 구원 모티프가 깔린 것도 맞다고 생각하지만, 단순히 생각해보면 그냥 인간은 공동체 내에서 살아야 한다는 거다. 사실 찰리와 그의 연인 앨런은 죽는 순간까지 추방당한 공동체에서 다시 환대받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찰리는 그 분노를 다른 사람에게 표출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아이러니하게도 교회가 자주 말하는) 선한 영향력으로 인해 어린 앨리와 토마스가 다시금 공동체로 돌아가 사람과 함께 하는 기쁨, 그 속에서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가를 깨달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그에게 경멸과 멸시를 가했지만, 그럼에도 '추방당한 자' 는 세상에 빛을 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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