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방일지> 는 삶에서 느끼지만 아직 통찰이 부족해 내 언어로 콕 짚어 표현할 수 없는 감정과 근원적 외로움이 나만 느끼는 게 아니라는 걸 알려준다. 보통의 삶을 보여주면서도 '보통의 삶' 이 무엇인지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포스터에 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지겹게 평범해 누가 좀 구해줬으면 좋겠다
세 사람이 사람이 빽빽이 들어찬 지하철 속에 있다. 그리고 지하철 바깥, 포스터의 전면에 한 남자가 걸어가고 있다.
세 사람은 남매다. 오른쪽에서부터 나이 순으로 기정, 창희, 미정이다. 남매는 경기도민이다. 매일 아침 힘겹게 도시 생활의 중심부인 서울로 향하지만 정작 서울엔 남매가 머무를 공간이 없으므로 일이 끝나면 부리나케 주변부인 경기도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지하철은 이런 세 남매가 지겨워 죽을 것 같은 지옥 같은 권태를 감수하고서라도 내리고 (혹은 내려지고) 싶지 않은 사회의 쳇바퀴나 다름없다.
포스터 전면의 남자는 구 씨라 불리는 남자이다. 구 씨는 프레임 바깥의 '어딘가' 에서 반대 방향의 정처 모를 또 다른 '어딘가' 로 향한다. 그는 내린 건지, 내려진 건지 모르겠지만 주류 사회의 상징과도 다름없는 지하철에서 일찍이 (그러나 멀찍이는 아니게) 떨어져 있다.
그리고 구 씨를 중심으로 세 남매의 시선이 엇갈린다. 기정은 구 씨를 바라본다. 세 남매에게 구 씨는 존재자체로도 미스터리이지만 기정에게 구 씨는 동생 미정과 '추앙' 하는 관계라는 점에서도 미스터리이다. 쟨 뭐지? 쟤 진짜 내 동생 추앙하나? 기정에겐 현재의 구 씨가 미스터리하다. (작품을 보면 알겠지만 관련 장면 진짜 웃기다) 창희의 시선은 구 씨가 향하는 방향과 같다. 작품을 보면 구 씨가 창희의 세속적 욕망을 이해하고 바라는 바를 들어주는 경향이 있다. 구 씨는 창희를 이해하고 창희는 구 씨를 이해한다. 하지만 이는 둘이 속해 있는 공간이 다르기 때문에 각자의 최선 속에서만 가능하다. 평행선을 이룰 뿐 시선이 맞닿지는 않기에. 미정은 다른 둘과 다르게 구 씨가 걸어온 길을 본다. 구 씨가 스스로 걸어오면서도 자각하지 못했을 그의 과거를 살핀다. 작품 속에 "한 살짜리 당신을 업고 싶어." 라는 말이 나오는데 나는 그 대사를 듣고 당신의 과거를 살펴줄 사람이 있었더라면, 이라는 함축을 읽었던 것 같다. 미정은 구 씨의 과거를 봤기에, 현재도 미래도 마주할 수 있었던 거라 생각한다.
작품을 보는 내내 떠올랐던 시,
<방문객>, 정현종 시인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작가님의 작품에는 늘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환대> 의 필요에 관한 메시지가 녹아있다.
다람쥐 쳇바퀴 굴러가듯 지긋지긋한 일상 속에서도 즐거움을 찾으려는 창희, 통념적 편견에 맞서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자 하는 기정이, 삶과 사랑을 올곧이 마주하며 나와 다른 삶을 걸어온 이를 환대하는 미정이, 가장 밑바닥의 인생에서 삶을 살아갈 용기를 가지게 된 자경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