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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화목 Jan 07. 2019

나에게 '빚'이란

빚 없는 삶을 위하여

흔히들 얘기한다. 진정 부자는 빚 없는 사람이라고. 그러나 우리 곁에 수많은 사람들은 빚더미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자의의 빚이든 타의의 빚이든 말이다. 어린아이들의 소소하게 오가는 적은 돈은 뒤로하고 많은 사람들(청년)은 아마 학자금이라는 빚을 먼저 지게 되는 것 같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대학이라는 곳으로 진학하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은 '등록금'을 내야 했다. '나를 더 성장시켜줄', '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는' 수많은 환상과 기대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등록금을 아깞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가 없는, 혹은 부모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그저 큰 부담일 뿐이다. 좀 더 나은, 좀 더 괜찮은, 좀 더 행복한 삶을 위해서 대학이라는 관문을 넘고자 했지만 '등록금'이 가로막는 경우는 사회를 향한 원망으로 터져 나오기도 한다. 때론 시위로, 때론 폭력으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은 '빚'의 세상으로 뛰어들었다.


농부에게 빚이란 어떤 존재일까. 많은 사람들이 거머리 같은 존재라 말하지만 내 생각엔 친구 같은 존재인 것 같다. 항상 곁에 있는 죽마고우랄까. 빚 없는 농부는 엄청난 부자이거나 주업이 농사가 아닌 사람들이다. '빚도 재산이다'라고 말하는 농부들은 끊임없이 빚을 지며 또한 끊임없이 빚을 갚아나간다. 빚을 갚기 위해 빚을 지며 또 그 빚을 갚기 위해 또다시 빚을 진다. 이렇게 무수히 쳇바퀴도는 상황이 어쩌면 농부들에겐 당연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나에게 빚이란 '계단'같은 존재이다. 지금 보다 높은 것, 높은 곳 또는 좋은 것, 좋은 곳에 올라가기 위해 디딤돌 밟는 것이라고 말할까. 1층에 올라가기 위해 계단을 걷는 것, 2층을 오르기 위해 계단을 걷는 것 나에게 빛이란 계단이다.


"선"이라고 말해야 할까, 아니면 "정도"라고 해야 할까. 내가 짊어질 수 있는 그 무게를 측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닌가 싶다. 그 측정이 정확하면 할수록 빚은 더 이상 나에게 짐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겐 친구이며 누군가에겐 계단이며 누군가에겐 거머리 같고 원수 같은 존재 빚.


 빚이 없었던 때를 생각해 본다. 그때 나는 웬만한 거리는 걸어서 다녔고, 동전을 내 표를 끊고 버스를 탔고, 편리한 기계 대신 몸뚱이에 의존해 있었다. 모든 게 육체적 노동으로 인해 생존이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책임지는 사람'인 것이다. 내가 한 일을 책임을 지는 일, 더 나아가서는 함께하는 사람들의 몫까지 책임지는 일 그것이 어른인 것 같다.


자유를 위한 책임, 편리를 위한 책임이 있듯이 성장하기 위한 빚이라면 열심히 갚아 나가는 것이 책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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