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저는 지켜만 보는데도 기가 쏙 빨립니다!
오늘은 이사했습니다. 정확히는 제가 아니라, 어머니께서 이사합니다. 저는 지켜보러 갑니다. 개인적으로 이번에 포장이사를 처음 경험해 봤습니다. 대단하더라고요. 이사 전문가 분들이 몇 시간 만에 이삿짐을 고스란히 옮겨 주시고 가셨습니다. 이사하는 내내 제가 할 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단지 지켜보는 것뿐이었는데요. 생각과는 다르게 지켜보는 일은 나름 힘든 미션이었습니다.
몇 해 전, 어머니께서 사시던 지역 재개발 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주를 했는데요. 어머니 입장에서는 편히 사시다가 하루아침에 내 집 놔두고, 전세살이를 시작하신 겁니다. 그리고 2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살던 집주인은 재계약하지 않고 자신이 다시 들어와 산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희 어머니는 이사 갈 새 집을 찾아 나서셨습니다.
새로 이사 갈 집은 집은 쉽게 구해졌습니다. 위치는 기존에 살던 집에서 횡단보도 하나 건너면, 바로 도착하는 같은 이름, 다른 단지의 아파트입니다. 직선거리로 따지면 한 200미터 정도 될까요? 아주 가깝습니다. 굳이 가까운 곳으로 정한 이유는 어머니 직장이 근처인데, 굳이 멀리 갈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집 크기는 예전 집보다 작아졌습니다. 가족이 어머니와 여동생 둘 뿐이라서, 그렇게 큰 공간이 필요하진 않았고요. 대신 대출 없이 구할 수 있는 전세 매물을 찾다 보니, 바로 이 집이 걸려든 겁니다. 어머니는 집을 보자마자 바로 계약을 하셨는데요. 요즘 전세 매물이 많이 없어서 더더욱 조바심이 나셨나 봅니다. 그게 한 달 전 일입니다. 그리고 시간은 쏜 살 같이 흘러서, 2월 28일. 오늘! 이삿날이 되었습니다.
아침 8:30, 어머니의 호출로 저는 어머니집에 왔습니다. 어머니는 중요한 물건들만 따로 챙기셨고, 집 안은 생활하던 모습 그대로입니다. 옷장도, 냉장고도, 싱크대 상하부장도 정리가 되어있지 않습니다. 제가 놀라서 어머니께 물었더니, 이삿짐센터에서 와서 다 알아서 해 준다고 합니다. 저는 처음 경험하는 포장이사가 신기하면서도 궁금했습니다.
8시 45분, 이삿짐센터에서 오셨습니다. 여자 한 분, 남자 세 분. 사타리 차 하나, 짐 차 하나! 어머니께서는 저에게 미리 미션을 하나 부여하셨습니다. 이사하는 동안 꼭 지켜보고 있으라는 특명을 받은 건데요. 일단 낯선 상황에 잔뜩 긴장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삿짐센터 분들은 역시 베테랑답게 표정부터 밝고 웃음기가 끊이질 않습니다.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 전, 의식처럼 종이컵에 믹스커피를 하나씩 타 드시는데요. 뭔가 비장하면서도, 오가는 농담 속에 여유가 한 껏 느껴졌습니다.
9시가 되어 본격적으로 이삿짐을 싸기 시작됩니다. 남자 3분 중 한 분은 1층에서 사다리차를 조작하고, 동시에 집차에 짐을 싣고요. 남은 여자 한분과 남자 두 분은 바로 집을 싸기 시작하셨습니다. 모두가 망설임 없이 자신의 일에 몰두하면도, 톱니바퀴 맞물리듯 일이 착착 진행되었는데요. 이렇게 바쁘게 돌아가는 이사 현장에서 단 한 명 안 바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저인데요. 혼자 명하니 서서 이삿짐 옮기는 모습만 보고 있었어요. 이삿집 멍~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정신 차리고 보니 저는 마치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았습니다.
가만히 지켜보니, 전문가는 역시 전문가더라고요. 뭔가 시스템이 느껴졌고, 모든 일들이 물 흐르듯 맞물려 돌아가면서 군더더기 없이 진행되었습니다. 불현듯 이 많은 짐은 어떻게 구분할까? 궁금했는데요. 공간별로 박스 색깔이나 비닐의 색이 다르더라고요. 그리고 특별히 취급해야 하는 물품들은 그들 나름의 기호로 표시를 해 놓았습니다.
이삿짐을 싸는 과정에서는 다양한 아이템들이 등장했습니다. 냉장고나 김치냉장고, 세탁기를 싸는데, 담요가 필요했고요. 옷이나 잡동사니는 비닐과 노란 플라스틱 박스가 유용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아이템은 바로 박스테이프였는데요. 모든 이삿짐의 마무리는 박스테이프였기 때문입니다. 모서리 마무리도 박스테이프, 선반 고정도 박스테이프, 담요도 박스테이프로 묶어버렸고요. 당연히 박스 입구, 비닐 입구도 테이프로 마감했습니다. 더 놀라운 건, 베테랑들은 박스테이브를 손으로 끊더라고요. 제가 너무 신기해서 옆에 있는 박스 테이프 하나 집어 들고 따라 해 봤습니다. 결과는, 실패! 쉬운 게 아니더라고요.
그렇게 이삿짐을 모두 내려보냈습니다. 9시에 시작해서 한 2시간 정도 걸린 것 같은데요. 점심을 드시고 1시간 후에 온다고 하셔서, 이사비용 외에 10만 원 정도 밥값으로 챙겨드렸습니다. 큰돈은 아니지만, 점심 맛있게 드시고 마지막까지 잘 챙겨주십사 하는 의미로 말이죠.
저는 어머니와 동생을 만나 김밥을 먹었습니다. 이사 한 번 하는데 할 일이 엄청 많더라고요. 동생과 어머니는 관리사무소, 은행, 부동산을 들러 집주인을 만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잠깐 모인 점심시간, 시간도 없는데 김밥도 감지덕지합니다. 오후에는 전입신고 때문에 동사무소에 가야 한답니다. 그리고 가스기사 아저씨를 비롯해, 인터넷기사 아저씨, 에어컨 기사 아저씨까지 줄줄이 예약이 되어있습니다. 진짜 정신이 없습니다.
한참 김밥을 먹고 있는데, 이삿짐센터에서 다시 오셨습니다. 바로 짐을 옮기실 줄 알고 황급히 먹던 밥상을 정리했습니다. 그런데 뜬금없이 청소 용품들을 들고 오셨어요. 업소용 진공청소기도 가져오셨고요. 그리고 한 1시간 정도 청소를 깨끗이 하시더라고요. 저는 청소까지 해 주시는 줄 몰라서 좀 당황했습니다. 집 안에 눈치 없이 멀뚱히 서 있는 제가 괜히 방해만 되는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복도에 나와 창밖을 보며 한 참을 서 있었습니다.
어찌어찌 청소가 다 끝났습니다. 다시 분주하게 이삿짐을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사타리차를 타고 끊임없이 이삿짐이 올라왔는데요. 저는 '저 많은 짐을 어떻게 정리할까?'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짐이 올라오는 족족 제자리를 찾아갑니다. 네 분의 경험 많은 이사 전문가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니까, 일이 착착 순조롭게 흘러가는데요.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이런 베테랑 분들도 당황한 문제가 터진 겁니다. 그 문제는 바로 세탁기 균형 맞추기였는데요. 새로 이사 갈 집 세탁기 자리 중간에 움푹 파인 단자가 있었습니다. 그 단차 때문에 세탁기 앞뒤 균형 맞추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벽돌을 가져다 괴일 만큼 단차가 컸습니다. 최대한 단차를 맞추고, 세탁기를 이리저리 흔들며 위치를 잡고, 균형이 맞을 때까지 미세하게 조정하며 꽤 오래 사투를 벌였는데요. 중간에 손이 모자라셨는지, 이때만큼은 저를 부르시더라고요. 세탁기 좀 잡아달라고 하셔서, 열심히 도와드렸습니다. 조금씩 어긋나던 균형이 어느 순간 딱하고 맞춰졌는데요. 그 순간, 나름 쾌감이 있더라고요.
오후 3시 30분, 이사가 끝났습니다. 이삿짐센터 사장님의 '부자 되세요'라는 말과 함께 오늘 하루 일정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오전 9시에 시작해서 오후 3시 30분까지 총 6시간 30분. 저는 단지 지켜보기만 했는데도, 기가 쏙 빨렸습니다. 이삿짐센터 사장님과 아저씨들은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존경스럽습니다.
이사를 끝내고 새로운 집을 둘러봅니다. 큰 집에서 작은 집으로 온 게, 피부로 와닿았습니다. 집이 좁게 느껴지기보다, 가구와 가전들이 엄청 크게 느껴지더라고요. 냉장고도 더 커진 것 같고, TV도 커졌습니다. 특히 작은 방에 들어가는 침대는 엄청 커졌는데요. 방을 꽉 채우더라고요. 그냥 잠만 자는 방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도 짐을 정리하고 나니까, 나름 여유공간도 생기고, 쾌적한 분위기도 느껴졌는데요. 일단 첫인상은 햇빛이 잘 들어와서 정말 좋습니다. 집주인이 하얗고 밝은 분위기로 인테리어를 잘해 놔서, 깨끗한 느낌에 기분도 좋아졌습니다. 뭔가 새 출발 하는 것 같은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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