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발굽 소리를 듣는다.』

저자: 윤대녕 / 출판사: 문학사상사

by 사이글
저자의 핵심 주장: "시대적 피로를 공감하고 치유되길 소망한다."

문발리헌책방골목에서 우리는 서로가 태어난 해에 출간된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을 구매했다. 1996년엔 윤대녕 작가님의 '천지간'이 대상이었다. 이것도 그 시대 사랑과 생명을 다룬 감명 깊은 책이었으나, 함께 수록된 자선작이 제목부터 더욱 눈에 띄었다.

시대를 초월해 할아버지, 백부, 아버지, 그리고 나를 잇는 것은 검은 말이었다. 그 말을 타고 돌아온 할아버지와 백부, 말처럼 타고 다닌 차가 사고 나서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힘든 시절에도 결국 맑은 미소를 띠게 되었다. 나 또한 검은 말을 떠올리며 새벽 일찍 밖을 향해 나아간다.

역마살로 이어진다던 내용은 단어의 의미와 다르게 사람의 미소를 상상하게 한다. 여기에서, 저자는 1990년대 시대적 피로를 공감하고, 인간의 깊은 내면으로 회귀하여 치유하길 바란다고 느꼈다.

말발굽 소리는 이제 흔치 않다만, 저마다의 방식과 경험으로 소리 없이 듣고 있을 것이다.



새로운 발견: "내가 들었던 바둑알 놓는 소리"

나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사이가 그리 좋지 않다. 최근에야 셋이서 만났지만 10년에 한 번쯤 보는 것 같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와 바둑을 둔 적이 있다. 내가 한창 바둑 학원을 다닐 때다. 어리고 힘이 넘쳤던 나는 바둑의 승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저 할아버지와 둔 다는 사실이 어른과 동등하게 되는 것 같아서 설레기만 했다. 그때마다 할아버지는 방정 떨면 안 된다는 듯 타이르셨다.

아버지는 퇴근하고 나시면 긴 베개 위에 팔을 개고 누워 TV로 바둑 경기를 보셨다. 아버지 방을 들어가면 항상 바둑알 소리와 몇 초간 남았다는 안내말이 기억난다. 나와 바둑을 두시지도 않았고 함께 보는 것이 지루하기도 했지만 아무 말 없는 적막함을 서로가 가장 편안해했다.

검은 말은 나에게 있어 바둑과도 같다. 시대가 지나도 우리 셋을 이어주고, 나는 기억할 것이다.



밑줄 친 문장: "자!! 이제!! 가자!!"

작중 검은 말이 대청마루를 넘어 문을 열고 말했던 말이다.

같은 상황을 상상해 보면 소름이 돋는다. 더구나, 그 말처럼 달리다 생명이 다했을 4명의 사람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모두 남성이었고 가장이었다. 그래서, 가족과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모진 노력을 다했을 그들이지 않았을까.

나에게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이제는 공감한다. 예전 같지 않은 몸과 정신을 부여잡고, 티 나지 않게 마음으로 외쳤던 말이었을 것이다.

그 사람들과 엮인 21세기의 검은 말은 내면 아주 깊이 들리지 않는 말로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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