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은 좋아요를 누르고 취소했다. 몸 안에서 무언가 쿵 내려앉았다. 그리곤 공허한 마음이 다시 올라왔다. 잠시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해보려다 포기했다. 그 사람은 좋아할 용기도 없어 보였고, 나는 또 한 번 취소되었다. 머릿속 모든 생각을 삭제하고, 역순으로 숫자를 셌다. 눈가의 다크서클을 잠시 만져보다가 깨어 있기가 불편했다.
오늘 우식 님을 만났다. 잠시 업무 전화로 양해를 구하기도 했지만 한식 정식을 맛있게 먹었다. 항상 회사에서 받은 상품권을 차곡차곡 모아 가족 여행을 가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나를 위해 상품권을 써주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진작 만나지 않은 게 미안했다. 내가 조금 더 돈을 번다는 핑계로 빵을 잔뜩 사 손에 쥐어드렸다. 전 직장을 다닐 때 자주 갔던 스타벅스도 들렀다. 양손 가득히 보낼 수 있어 안심이 되었다. 내 친구보다도 짧은 헤어짐을 아쉬워해 보였다. 헤어짐이 익숙해져 얼른 집에 가고 싶던 나와 달랐다. 그에게 "어떤 삶의 목표가 있어요?", "어떤 삶을 살고 싶어요?"라는 몽상가로서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을 던졌다. 흠칫하는 대답이 들렸다.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행복을 쫓다 보면 삶이 대부분 고통임을 깨닫기에 행복이 아닌 고통과 친숙해지라는 말을 이해하고 있다. 단지, 그러다 보면 내가 진정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 회사에서, 집에서, 카페에서 그 어디에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내가 행복하길 바라지만 정작 행복을 많이 포기하고 살았다. 내가 우식 님에게 마음이 갔던 것은 이런 생각 때문인 것 같다. 단순하지만 강력하고, 약해 보이지만 단단한.
장애를 가진 사람이지만 그것이 행복과는 전혀 상관관계가 없었다. 나보다 행복한 사람으로 보였고, 나의 행복에 의문을 가졌다. 철이 든 몽상가로 그냥 살아가게 될까. 아니면 그것이 더욱 부끄러워질까.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 또 그 사람도 웃는 사진으로 도배되어 있다. 행복하겠지 싶어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