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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형렬 Apr 29. 2020

미래의 수학자를 위한 조언

수학을 공부하려는 학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1

여러가지 고민으로 상담을 요청하는 학생들이 많았던 몇 년 전 여름에 쓰다가 말았던 글이 있습니다. 그 글에서 그나마 글의 모양을 갖춘 부분을 발췌하여 이곳에 정리해봅니다. 이 이야기의 뒷 이야기도 곧 쓸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아래 내용은 저의 개인적인 생각들일 뿐이니 여러 고민을 하는 중에 참고만 하시면 되겠습니다. 


1. 막연히 수학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는 학생들에게 


수학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사고하는 방식에 관한 학문입니다. 무언가 주어진 대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그 대상을 넘어서서 더 많은 것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인가와 같은 것들을 고민하는 과정이지요. 다만 세상의 모든 것을 대상으로 하기는 어려우니 소위 '수학적으로 정의된' 대상들을 중심으로 이 과정을 하게 됩니다. 무언가를 이해하는 방법을 새로 만들거나 개선하면서 인간이 이해하는 수학의 체계를 넓히는 것이 수학 연구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학교에서 '수학 과목들'에서 배운 내용은 무엇일까요? 수학이라는 사고 체계는 오랜 시간 동안 추상화와 일반화를 거치면서 일상의 언어로 표현하려면 너무 복잡하거나 중요한 핵심들이 상당히 생략되거나 하는 부작용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문에 이 사고 체계 내에서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는 수학자의 언어를 배우고 그 언어로 소통하는 것을 배우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수학 수업은 대부분 이러한 '언어'를 배우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이 결코 짧지도, 쉽지도 않지요. 


수년간 학교에서 영어 수업을 듣고, 보는 시험마다 백점을 받았다고 해서 외국인을 만나서 영어로 쉽게 대화가 가능하거나 영어로 무언가 생각을 정리해서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경험을 통해서 이미 알고 있을 것입니다. 수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수학 수업들을 통해 배운 내용을 잘 숙지하고, 주어진 문제를 잘 풀더라도 실제로 수학을 바로 잘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이미 말했듯 수학을 배우는 과정은 언어를 배우는 과정과 비슷하게 생각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학창 시절 어려운 수학 문제를 놀라울 정도로 잘 풀던 학생들은 자신들이 수학 연구를 해도 엄청나게 잘 할것이라고 쉽게 생각하고는 합니다. 또 반대로 수학 문제를 빨리 못 풀거나 수업을 따라갈 때 어려움을 느꼈던 학생들은 수학 연구와 나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 일찍부터 단정 짓기도 하지요. 하지만 주어진 학습환경에서 언어의 틀을 배우는 것과 그것을 활용하여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하는데에는 꽤 큰 간극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단 어느 정도 기본적인 수학의 언어를 습득하고 나면 스스로 무언가를 생각해보고 그것을 수학의 언어로 표현해보는 과정을 경험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냥 계속해서 '언어'만을 배우다보면 동기부여도 잘 안되고 흥미를 잃기도 쉽지요. 또 연구가 나한테 맞는지도 알기 어렵구요. 관성에 이끌려 대학원에 가고 처음 경험해 보는 연구가 어려운데 지금까지의 시간 투자가 아까워서 억지로 몇 년을 버티며 졸업을 하는 것보다는, 미리 시간을 내서 '언어를 배우는 단계의 뒤'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 굉장히 가치있는 경험일 것입니다. 



2. 교수님과 연구 맛보기 (대학원생이라면 지도교수 정하기) 


그런데 '수학 연구'를 경험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아무래도 교수님들의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겠지요.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앞서 말한 '어느 정도 기본적인 수학의 언어'라는 것이 생각보다 꽤 폭넓은 범위를 다루고 있는데요, 이것을 충분히 습득하지 않고 교수님과 개별적으로 연구를 시작하는 것은, 아니 그보다 어떤 교수님과 개별적으로 연구할 지를 정하는 것조차 사실 꽤 어려운 일입니다. '왠만한 학부과목을 다 듣기 전에는 찾아오지마세요'라는 말이 아닙니다. 개별연구(KAIST에서는 학부생이 교수님과 1:1로 연구 경험을 해보는 과목을 개별연구라고 부릅니다)를 하기 전에 미리 교수님들을 찾아뵙고, 연구분야에 관하여 질문을 하여 그 분야에 내가 관심이 있는지 생각을 해보고, 관심이 있다면 어떤 과목들을 들어야하는지 어떤 책을 읽어볼 수 있는지 조언을 구하여 따로 책도 조금 읽어보고, 연구를 하게 된다면 최소한 어떤 것들을 알아야하는지 듣고 그것들을 찾아서 스스로 공부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개별연구를 이번 학기에 하려고하니 이제 처음 만나서 그런 과정들을 겪어보자고 하면 교수의 입장에서도 학생을 파악하는데만 학기의 반이 지나가버리기 쉽습니다. 연구를 경험해보기 전에 상담 등을 통해 교류를 하고 어느 정도 나와 그 분야가 맞는지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 해야, 한 학기 동안 최대한 알차게 보낼 수 있는데, 그런 것들을 이미 학기가 시작한 이후에 하겠다고 하면 개별연구를 통해 얻어가는 것이 크지 않겠지요. 


관심있는 분야나 교수님이 있다면, 이메일을 드리고 가끔 찾아가서 궁금한 점에서 관해서 묻기도 하고, 그 분야의 세미나에 참석하여 대략적으로 어떤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는지도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이것은 대학원생들이 지도교수를 정하기 전에 거쳐야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처음 만나서 한 시간 정도 대화해보고 이 사람과 몇 년 동안 깊은 교류를 할 수 있을 지 없을 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겠어요? 물론 이것이 학생들 입장에서 어렵다는 것을 잘 압니다. 하지만 대부분 교수님들은 바쁘신 와중에도 시간을 할애하여 학생들과 상담하고 궁금한 점들에 답해주려는 마음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도 불쑥 찾아가기 보다는 이메일로 미리 약속을 잡고 가는 것이 좋겠지요). 



3. 저는 수학을 잘 못하는 것 같은데요.. 

 

'언어'를 배우는 단계를 지나가서 정말 수학을 하다보면 깨닫는 것 중 하나가 수학이라는 것이 어떤 정해진 모양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수학이라는 학문을 하는 과정이 지식의 습득보다는 사고하는 영역의 확장에 가까운 것이고, 개개인의 서로 다른 사고하는 방식은 자연스럽게 서로 다른 이해하는 틀을 만들고, 그 안에서 서로 다른 수학이 이루어져 갑니다. 기존의 수학자들이 하던 수학을 잘 못한다고 해서 수학을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아직 자신에게 맞는 수학을 찾지 못한 것 뿐입니다. '수학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은 없다, 사람마다 잘 할 수 있는 수학이 다른 것 뿐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오해를 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언어를 배우는 단계의 고통을 피하는 것은 답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처음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을 생각해보세요. 이는 단순히 어휘를 익히고 문법에 맞는 문장을 이해하고 구사할 수 있게 됨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를 사용하여 사고의 도구로 활용하는 방법을 익히는 과정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분의 머릿속에서 많은 생각들을 하고 계실텐데요, 이는 '언어'라는 형식을 빌려서 구현되고 이해가 됩니다. 마치 할 줄 아는 언어가 하나도 없었다면 나는 도대체 어떻게 생각이라는 것을 하고 있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지 상상이 잘 안가듯이 언어와 사고에는 밀접한 연결 관계가 있습니다. 


수학으로 와도 이것은 동일합니다. 수학의 언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숨어있는 부분이 '수학이라는 체계 안에서 생각하는 방식을 훈련받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모든 수학자는 다 다르게 사고하고 다 다른 수학을 하지만, 그 안에 모두가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약속'이 되는 체계가 있고, 그 체계를 내 사고 체계 내에 체화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이 부분은 어느 정도 인내심이 필요한 과정이고 딱히 일반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이 과정에서 '어 저 친구는 공부는 하나도 안하는데 나보다 더 훨씬 빨리 잘 배우네?'하고 위화감을 조성하는 친구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대체로 사실이 아닙니다. 이 훈련 과정 자체가 '사고하는 훈련'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무언가 혼자 골몰히 생각하고 논리적으로 결론을 내리는 것에 다른 사람들보다 관심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그냥 자라오면서 그 사고의 훈련을 자연스럽게 매일매일 해온 사람들입니다. 즉, 총 훈련량이 훨씬 더 많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 보면 나보다 훨씬 짧은 시간 내에 훨씬 빨리 배우고 있는 것 뿐입니다. 


그래서 일단 이러한 기본적인 수학적인 사고체계라는 것을 익히고 난 다음에는 자유롭게 여러 가지 수학 분야를 접하면서 나에게 맞는 연구 주제를 찾으면 됩니다. 여기서 운이 많이 필요한 것이 사실인데, 왜냐하면 좋은 멘토(대학원생이라면 지도교수)를 만나는 것이 이 과정의 성패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지요. 좋은 멘토를 찾는 것에는 운이 많이 필요하지만 2번 항목에서 썼듯이 스스로 할 수 있는 노력도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강조하고 지나가고 싶은 것은, 결국 지도교수는 수년간 수학적으로 성장하는 동안 지속적으로 도움을 받아야 되는 사람입니다. 때문에 무엇보다 자주 보면서 대화를 나누고 함께 공부하는 과정이 힘들지 않은 것이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도교수를 정하기 전에 여러 상황에서 교수님을 만나보고 대화해보면서 나와 인간적으로 잘 맞는 사람인지 알아볼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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