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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상하는 토끼 Jul 31. 2020

무서워서 짖는 겁니다.


친구의 전화가 왔다. 자신의 빠른 승진 뒤에 도는 험담과 견제에 힘들어했다.

약속이 있어서 긴 통화를 할 수 없었다. 

“야 ‘개는 훌륭하다’ 프로그램 아냐? 어제 방송된 거 봐봐. 보고 다시 통화하자.”


다시 걸러온 전화에서 친구는 웃으면서 말했다.

알겠어ㅋㅋ 무서워서 짖는 소리에 쫄지 않을게     

역시 똑똑한 친구다.




개의 문제 행동을 교정하는 프로그램, ‘개는 훌륭하다’를 즐겨본다. 개와 사람의 심리적 공통점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친구에게 보라고 한 방송에는 사람을 볼 때마다 쉴 새 없이 짖는 문제견이 나왔다. 강형욱 훈련사가 짖지만 못하게 했을 뿐인데 그 개는 폭군에서 바로 겁 많은 쭈글이가 되었다. 강 훈련사가 배 안쪽으로 민감한 부위를 만져도 어떤 저항도 못한 체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 다시 짖기 시작했다. 축 쳐져 있던 꼬리는 짖을 때마다 공기를 주입받는 듯이 하늘로 솟았다.     

 

강훈련사가 알겠다는 표정을 지은 뒤 말했다.

“얘 완전 겁쟁이네요.”

 

무서움을 담고 있어야 하는데 겪고 싶지 않으니깐 돌파구로 위협을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두려움을 없애려고 한번 짖거나 달려들었는데 자신이 느끼던 두려움이 사라지는 경험을 했다. 그러면 그때부터 공격적인 성향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KBS 개는 훌륭하다




개는 위협을 짖는 모습 하나로 보여주지만 인간은 다양한 갈래의 모습으로 보여준다. 뒤에서 험담을 하고 악플을 달고 갑질을 한다. 어쨌든 본질은 자기 안에 있는 두려움을 마주하기 힘들어서 ‘아니, 나 힘쎄!’, ’아니, 너 잘못!’하고 밖을 향해 소리치는 것이다.






처음 미움 받는 공포에 빠져본 건 초등학교 3학년때다. 내성적이였던 내게 단짝이 한 명 있었는데 친하지도 않던 A가 우리 둘의 팔짱을 억지로 떼어내더니 친구를 데려갔다. 그 후 그 친구는 A의 무리에서 놀게 되었고 A의 글씨체가 분명한 거짓 편지는 나를 반 전체 놀릿감으로 만들었다. 그때 나는 A가 나를 미워하는 이유를 납득하기 위해 내 안에서 미운 구석을 찾느라 애를 썼다.


그때는 알 수 없었던 그 이유가 지금은 선명히 보인다. 돌고래 보다 조금 더 높은 IQ 점수를 받은 A가 내 IQ 결과표를 바라보면서 짓던 표정, 아이가 좋아하는 남자애가 쉬는 시간마다 자리에 와서 장난칠 때 흘겨보던 A의 눈에서 말이다.


우리의 어린 마음은 누군가의 공격성에 쉽게 가슴이 놀라고 자기 개인적인 문제로 연결시킨다.

'내가 뭔가를 잘못했나?'


본질을 간파한 기민한 지성은 이렇게 말한다.


"아니, 네 잘못이 아니야.

상대는 심사숙고해서 내가 싫고 미운 게 아니야

자기 안의 겁을 느끼는 게 싫고 미운 거야.

자기 안의 두려움을 떨쳐내려고 하는 시도들을 네 문제로 만들 필요 없어.  

 ‘그래, 너 지금 무섭구나’ 하고 씩씩하게 마저 어가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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