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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상하는 토끼 Jul 08. 2020

실패가 뭐라고 생각해?

친오빠가 동네 산을 오르자고 했다. 저번에 가기 싫어하는 걸 겨우 끌고 갔는데 막상 가보니 좋았던 모양이다. 선선한 밤공기를 스치며 어둑한 산길을 걷다 보면 자연스레 대화에 집중하게 된다. 오빠가 먼저 물꼬를 텄다. “요즘 왜 브런치에 글 안 써? 이번에 ‘실패’를 주제로 공모전 하던데 한번 써보지?” 브런치도 오빠의 권유로 시작되었다. 생각을 정리하도록 자극해주어 고맙다.       


“안 그래도 실패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봤어. 마침 최근에 본 회사 면접에서도 나한테 ‘나의 실패의 경험’을 들려달라고 하더라고. 근데 순간 실패라고 할 만한 게 안 떠오르더라? 오히려 ‘실패가 뭐지?’라는 생각부터 들었어. 오빠는 실패가 뭐라고 생각해?”      


오빠의 실패는 ‘포기하는 것’이라 했다. 자신이 정한 기준에 도달할 때까지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실패하지 않은 거라고 했다. 힘나는 울림이 번졌다. 브런치에 일주일에 한 편씩 올리자고 스스로 약속했는데 못 지키고 있었다. 당장 실패라고 꼽자면 떠오르는 것이 그것인데 포기만 말자고 되새기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덕분에 등산을 마치고 곧장 이 글을 써 내려가고 있다.      






다시 물었다. “그러면 누가 오빠한테 ‘실패의 경험을 들려주세요.’라고 말하면 어떤 게 떠올라?”      


“나는 재수를 하고도 원하는 점수를 얻지 못 한 거지. 그리고 내 한계를 인정하고 포기했으니깐”


“그래? 오빠가 진심으로 원했던 거야? 사실 나는 사람들이 좋은 대학 가면 좋다니깐 가고 싶긴 했지만 마음속 깊이 간절하진 않았어.”  


“진정 원했지. 그렇지만 제대로 공부하는 법을 몰랐던 것 같아. 무식하게 열심히만 했지. 제대로 된 방법으로 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잖아. 그래서 그때가 안타까워”      


“평소에도 느끼고 있었지만 오빠는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똑똑함’에 굉장히 큰 가치를 두고 있는 것 같아. 최근에 대치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느낀 점이 있어. 다양한 수준의 학생들을 많이 가르쳐 봤는데, 대치동 학생들은 확실히 다르더라. 학습능력이 정말 뛰어나. 감탄이 나올 정도로. 그렇다고 그 감탄이 대단한 우월성으로 번지진 않았어. 사실 그동안 경험해온 학생들 중 대치동 학생들이 다루기 가장 수월했어. 아이들이 ‘잘한다’는 칭찬을 굉장히 듣고 싶어 하니깐. 그래서 이런 의문이 들더라고. 아주 어릴 때부터 이미 만들어진 지식체계를 가장 빨리 습득해서 인정받는 것에만 길들여진 사람이 나중에 그 틀을 깨는 창조를 할 수 있을까? 근데 앞으로의 인재상은 창의적인 사람이잖아.”           






낮은 산이라서 금세 정상에 도달했다. 대화에 집중해서인지 평소보다 더 빨리 도착한 듯했다. 내가 초등학생이었던 그때를 기억한다. 오빠가 부모님 앞에서 무릎 꿇고 비장하게 재수하고 싶다고 말하던 모습. 그리고 두 번째 수능을 끝내고 불꺼진 방에서 죽은 듯이 누워만 있던 장면도. 오빠가 좋은 직장에서 업무 능력을 충분히 인정받고 있어도 여전히 학력 콤플렉스에 메여 있는 것 같아 내심 안타까웠다. 언젠가 그 점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싶었는데 기회가 온 것이다.  

    

“아주 옛날에는 물리적으로 힘이 센 것이 우월함 이였지만 인간의 의식이 성장함에 따라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인재상이 달라졌잖아. 그렇듯이 오빠가 가치를 두는 입시제도에서 똑똑함도 한 시대의 가치일 뿐인 거지. 내가 대치동 아이들에게 절대적 우월성을 부여하지 않듯이 수능 점수에 대한 오빠의 인식이 변한다면 실패도 없는 게 아닐까?”      


오빠는 생각하는 듯 잠시 침묵하다가 말을 꺼냈다. 

“그렇지.. 근데 사람이 사회적인 존재인데 사회적 가치에 영향받지 않고 유아독존으로 살 수 있을까? 그건 성직자나 성인만 가능한 일이 아니겠어?”     


“맞아. 주류로부터 독자적인 가치를 따르는 게 참 어렵지. 그렇다고 독립된 자를 별개의 삶으로 치부해버릴 건 아니라고 봐. 모두가 그 과정 속에 있을 뿐이야. 한 걸음, 한걸음... 오빠 말대로 더디더라도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우리의 대화는 돈내기로 끝났다. 사소한 변화부터 하자며 밤 10시 이후로 휴대폰 만지지 않기를 걸고. 실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부정적인 자기 인식으로 이어지는 실패의 경험에는 두려움이 깔려 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루저로 볼 거야.’ 


세상이 방점 찍어주는 가치와 별개로 자신의 시도들을 응원해줄 수 있다면, 모든 시도의 끝엔 배움만 남을 것이다. 그 응원 마저도 노력이 필요하지만,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성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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