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겪은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때마침 주유를 해야해서 들른 주유소에서의 이야기이다.
나는 조금은 여유있는 월요일 아침을 위해 주말에 주유를 하기로 생각하고 집앞 주유소에 들렀다.
직원에게 4만원 어치 주유를 부탁하며 카드를 건낸 후 기다리던 나에게 잠시후 주유소 직원은 주유가 끝났다면 카드와 영수증을 내밀었다. 순간 느낌이 이상해서 주유기를 보았는데 거기에는 “39,995”이라는 숫자가 표시되고 있었다. 직원에게 “39,995원인데요…” 라고 말하자 그 직원은 “들어갈만큼 들어갔어요.”라고 나에게 대답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다시 “39,995인데?” 라고 하자 직원은 쓱 보더니 그냥 가버렸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5원의 차이는 그 직원말처럼 크지 않다. 당시 리터당 1,320원이었기에 5원은 1.35ml 로 말 그대로 들어갈만큼 들어간 숫자이고 주유기의 오차범위 안에 들만한 숫자이다. 하지만 나는 주유소를 나가며 여기는 다시는 안 오겠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 직원은 고객의 기대 가치를 저버리는 행위를 했다.
고객은 어찌됐건 4만원 어치의 가치를 요구했다. 직원은 적어도 그에 맞는 가치를 제공해야 했지만 그보다 적은 가치를 제공함으로써 3중의 손해를 끼쳤다. 고객의 돈을 손해보게 했고, 고객에게 제품을 덜 제공했으며 어이없는 태도로 고객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 그 주유소는 고객의 돈을 더 가져갔고 더 적게 제공함으로써 이득을 얻었을지 몰라도 최소 한 사람의 고객을 잃어버리는 실수를 범하고 만 것이다. 한 고객에게 잘해주면 주변 6명에게 그 기업을 칭찬하지만 한 고객에게 잘못을 저지르면 주변 100명에게 그 기업을 비난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그 고객은 아주 작은 그런 손해로 인해 이렇게 글을 써서 다른 사람에게 널리 알리고 있는 중이다. 아마 주변사람들에게도 다 말하고 불매할 것을 종용할 것이다.
둘째, 이 직원은 고객의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를 했다.
기대한 만큼의 가치를 제공받을 것을 기대하였지만 그 직원은 그런 행위를 통해 조금이나마 신뢰하던 마음을 저버리는 행위를 했다. 최소한 지불하는 돈만큼 나에게 가치가 돌아와야 신뢰관계가 시작된다. 그런데 아주 적은 돈이지만 돌아오지 않음으로 인해 이 고객은 ‘이런 작은 것도 제대로 하지 않는 이곳에 정품? 정량? 을 제공하고 있을까?’라는 의심을 하게 만들었고 결국 다시는 오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만들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속담처럼 하나밖에 보지 않았지만 열을 의심하게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신뢰관계는 의심이 들기 시작하면 깨지기 마련이다. 가족관계에서도 그러한데 비즈니스 관계에서는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는 않다.
기업과 고객의 신뢰관계는 재화의 거래라는 비즈니스 관계를 통해 형성된다. 고객이 기대한 가치만큼 기업이 제공할 때가 신뢰를 만드는 첫발이다. 여기서 “기대한 가치만큼 제공한다”라는 것은 말 그대로 최소한의 신뢰가 형성될 조건이라는 것이다. 고객에게 유용한 기대가치 이상을 제공하기 시작할 때 고객은 더욱더 그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게 되고 만족이 기대보다 높아지면 열렬한 팬이 된다.
그러나 그러한 열혈팬도 한 순간의 기업 자만으로 인해 등을 돌리는 것 또한 현실이다. 신뢰가 깨진 관계를 고객이 일부러 이어나갈 필요가 없는 세상이며 대체할 것이 많은 세상이기 때문이다.
기업은 제공할 만큼 제공했다고 만족해할 것이 아니라 정말 고객이 기대하던 가치가 제대로 제공되고 있는가를 살펴야 한다. 고객의 기대를 저버리는 작은 것은 없는지 끊임없이 살펴야한다. 그리고 신뢰관계를 이어가도록 살얼음판을 걷는다는 생각으로 고객에게 다가가야 한다. 고객과의 관계를 지속하는 것은 어렵지만 한번 돌아버린 고객의 마음을 다시 되돌리는 것은 더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기업문화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경영진이 직원에게 기대하는 실적과 성과의 결과물이 있고 직원이 회사에 기대하는 보상수준이 있다. 이정도면 되겠지하는 생각을 했다면 이미 신뢰의 결합을 망치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성과와 소유에 대해 실제 가치보다 더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음은 여러 심리학적 실험을 통해 증명된 바 있다. 이는 경영진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보여준 보상의 결과물에 대해 높게 평가하기 마련이고, 직원들도 자신의 성과에 대해 경영진이 생각하는 것보다 대체적으로 높게 평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합리적 보상에 대한 상호 기대 수준의 차이는 자연스럽게 신뢰의 갈라진 틈을 만들고 서로간에 불신을 만들게 된다.
그렇기에 평가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상호간의 기대수준에 대해 솔직한 합의점을 미리 만들어두지 않고 나중에 결과물이 이미 나온 다음 합의하려 한다면 동의하는 듯이 보여도 공감하지 못하고 신뢰의 수준을 낮추게 될 것이다. 결과물에 대한, 성과에 대한, 그리고 보상에 대한 상호간의 기대수준을 먼저 일치시키고 일이 시작되어야 한다. 그리고 합의된 보상에 대해 명확히 지급되어야 한다.
신뢰는 그러한 약속에 대한 정확한 이행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