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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엉뚱이 Mar 30. 2020

아마-프로의 행복

-근자감의 근원을 찾아서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인하여 회사가 2주간 휴업을 결정하게되었다. 아마도 정부의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에 발맞추기 위함인 듯하다. 무려 14일간의 텅빈 시간을 갑자기 부여받은 터라, 나는 귀가하고나서 약간의 공황상태 비스무리한 감정까지 느끼게 되었다. 뭘 하지? 뭘? 뭘?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않았다. 일단 와인 한 잔하고...생각해보자. 가장 사랑스럽게 마시는 데일리 와인인 뉴질랜드산 러신안 잭 한 병을 땄다. 평소 와인 반 병도 못마시는 내가 한 병을 다 마시고 침대로 실려갈 때까지 14일간의 갑작스런 시간에 대한 계획은 세워지지않았다.


다음날, 지끈거리는 머리통을 부여잡고 간신히 일어나 휴가 첫 날을 맞이하였다. 먹히지않는 밥을 물에 말아 꾸역꾸역 우겨 넣으며 여기저기 집안 구석구석을 노려보던 나는 드디어 14일간의 할 일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DIY(Do It Yourself)로 평소 간절하게 원했던 집 리모델링을 해보자! 돈생기면 하자며 매년 미루었던 리모델링...다소 서툴지만 우리 손으로 해보자구! 용기백배해진 나는 집안 곳곳을 다니며 손질이 필요한 곳과 대충의 건축자재 견적을 내보며 하루를 보냈다.


두번째 날, 본격적인 리모델링을 하기 전에 일단 집안에 다섯 곳 정도 되는 수납공간 및 창고를 정리해나가기로 하였다. 그런데 이게 장난이 아니었다. 이 아파트로 이사온지 10년이 넘었는데, 몇 몇 큰 창고 깊숙한 곳에는 아직까지 풀지않은 짐들이 그대로 있었고, 그 앞과 옆, 위에는 매년 더 이상 필요치않게 된 살림살이들이 차곡차곡 더해져,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해서 리모델링, 창고정리고 지랄이고 다 때려쳐버리고 싶은 강한 욕망을 갖게 만들어버렸다.


하지만, 별 수있나...나에겐 14일이나 공허한 시간이 주어져있다. 게다가 그 기간동안은 월급 일부 삭감까지 포함되어있으니, 뭔가 생산적인 일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나름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두 주먹 불끈쥐고 하나 둘씩 정리해나갔다. 그런데, 정리를 하다보니 짐들 속에서 의외의 보물들을 발견하게되었다. 어라? 이게 여기 있었네? 어? 이건 우리 딸래미가 10살때 국선에 입선한 미술작품이네...혼자 낄낄대며 창고의 오염된 공기속에서 하염없이 옛시간을 추억하기도 하니 벌써 해가 산등성이 너머로 내려가고있었다.


이렇게 휴가의 반 정도를 그간의 짐을 정리하는데 썼다. 이제, 남은 것은 리모델링...그런데 이거, 무작정 달려들지말고 원칙을 한번 세워보자. 일단, 기존의 물품들을 재활용하여 최대한 투자비용을 아낀다는데 와이프와 합의하였다.. 그리고 톱과 망치 등 공구를 활용하여 직접 만들고 수선해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주문한 비용을 계산해보니, 페인트 및 시트지 등등 몇 십만원이 훌쩍 넘어갔다. 사람쓰면 몇 백깨져...스스로 위안하며 달라붙었다.


사실, 업체에 견적을 안내본 것은 아니었다. 거실 도배에다 중앙에 인테리어 붙이고 어쩌구 합하니 3백이 넘었다. 흐미라, 월급 깨져가며 억지 휴가보내는데 몇 백 투자라니...미쳤지 하며 그냥 DIY를 고집하게 된 것이었는데, 다 끝내고 보니 이러한 비용절감만이 얻은 소득이 다가 아니었다. 나름 하나의 고귀한 가치를 얻게된 것이다. 성취감이 바로 그것이다. 아, 이거 얼마만에 느끼는 감정인가?  1년 전에 회사에서 준비부터 실행까지 너무나 힘들었던 그룹 임원세미나를 성공리에 끝내고 회장님을 비롯하여 경영진 모두에게 칭찬받았을때도 느끼지 못했던 그 감정 아니던가? 그런데, 그 고귀한 감정을, 집안의 쓰레기들을 치우고 벽에 페인트를 서투르게 칠하면서 느끼다니..헐!




여기 프로와 아마추어가 있다. 어떤 일을 수행할 때 프로는 돈을 받는 사람이고 아마추어는 돈을 내는 사람이다. 그런데 어떤 프로는 수행결과가 기대에 못미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아마추어는 오히려 프로보다 더 훌륭한 결과를 낸다. 프로와 아마추어라는 포지션과 일의 역량에 따라 사분면을 한 번 그려보면 4가지의 부류를 볼 수있다. 프로-프로, 프로-아마, 아마-프로, 아마-아마...


첫번째 그룹인 프로-프로는 뭐 당연한 부류들이다. 돈받고 기대만큼 일한 사람들이다. 네번째 그룹인 아마-아마 역시 당연한 부류이다. 돈내고 뭔가 수행했는데 누구나 볼 때 기대에는 못미치는 결과를 가져온 사람들이겠지...문제는 프로-아마 그룹이다. 프로이지만 돈값을 못해서 고객의 만족을 못끌어내는 부류들...주변에서 너무나 많이 볼 수있다.  마지막으로 아마-프로 그룹은, 대단한 사람들이다. 취미생활이나 여가생활하는데 거의 프로급의 결과를 생산한다.


나와 와이프가 이번 집안 리모델링한 것은 사실 다른 사람들의 기준으로 보게되면 네번째 그룹인 아마-아마 그룹 수준일게다. 하지만, 성취감을 느꼈다는 것은 우리끼리의 기대치는 충분히 달성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기대치를 처음부터 한껏 낮춰 시작한 일이기에 가능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일의 결과가 ‘아마-프로 그룹’ 정도의 수행결과라는 나름 확실한 근자감?(근거없는 자신감)을 느끼고 코로나19로 생긴 휴가의 마지막 주간을 보낼 수있었다. ㅎㅎㅎ


‘우연한 걸작’의 저자인 마이클 키멜만은 이야기한다. 세상에는 비예술적인 예술도 있다고...즉, 전문가도 행운이 따를 수있고 아마추어도 충분히 전문적일 수있다는 것이다. 빨리 이 초유의 사태가 진정되면, 일에서도 프로-프로, 취미나 가정생활에서도 아마-프로의 결과를 생산해내는 진정한 의미의 프로가 되고싶다.


-용모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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