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일전 HR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는 박사님 한 분이 전화를 하셨다. 코로나 이후 HRD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라고 물으셔서, 박사님도 모르는 것을 일개 회사원인 제가 어찌 알겠소이까? 했더니, 허허 웃으시며 그냥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한 현장 HRD의 목소리들을 듣고 싶어서 전화하셨다 한다.
사실 필자가 다니는 회사는 현재 코로나로 인하여 주 고객인 외국인들의 발걸음이 끊겨서 매우 좋지않은 상황이다. 따라서 당장 우리 회사의 구조조정 플랜 및 흩어져가는 조직문화를 추스리는데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는데 그 질문을 받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나의 시야가 너무 Micro화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좀 더 관점을 확장해 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이슨 생커는 최근 저서 '코로나 이후의 세계'에서 Risk Management의 중요성, 원격근무와 온라인 교육 등 언택트 환경, 심각해지는 미중 관계 등 국제질서 와 새로이 대두되는 안보 문제, 일자리로 비롯되는 정치 경제적 문제 등을 미래학자의 눈으로 향후 포스트 코로나의 방향을 조목조목 톺아보고 있다.
그 중에 HRer로서 눈길이 가는 키워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더십이 중요하다'는 대목이었다. 책에서는 리더십의 발휘에 관한 디테일한 내용까지 가타부타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미래학자의 이러한 갑작스런 지적은 나로 하여금 몇 가지 사유를 촉발하게 하였다.
위기상황에서 리더의 의사결정의 질은 매우 중요하고 때에 따라서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역사에 기록될 만한 작금의 코로나 19 팬데믹 이후의 시대에서는 과연 어떠한 리더십 역량이 더 중요할까?
필자가 생각*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첫번째는, '민감성'과 '직관력'이다.
두번째는, '다양한 시나리오 제시 역량'이다.
세번째는, '설득력'에서 나오는 '협력과 연대 정신'이다.
(*'생각'이라고 표현한 것은 위에 제시한 역량이 자료분석에 의한 것이 아닌 필자 개인의 직관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생각'이라고 한 것이다)
하나하나 풀어가 보자.
지난 해 말에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 19에 대한 인류의 초기 평가는 매우 관대(?)한 것이었다. WHO는 물론이거니와 일부 감염병 의료계를 제외한 의료보건, 경제, 사회 등의 주요 주체들은 이것을 흔한 독감 정도의 사인으로 받아들였고, 충분히 빠른 시일내 극복 가능한 것이라 생각하였다.
아무도 이것이 팬데믹으로 흘러갈지 몰랐고 설사 알았다하더라도, 중세의 흑사병이나 1918년 스페인 독감처럼 역사를 바꿀 정도의 파괴력이 있는 것이라는 것은 사실상 생각하기 힘든 상황이었던 것이다.
기업의 리더들 역시 마찬가지...그들은 코로나 19 상황 초반, 확산 사태에 대하여 강건너 불구경하듯 멀거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대부분의 리더들은 코로나 19가 어떻게 기업에 미칠지, 상황의 전 후 좌 우 ...에 대하여 그닥 관심도 없었고, 따라서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았던 것이다.
왜?
필자의 생각에는, 현대의 기업이 리더에게 지나치게 분석력 위주의 사고를 요구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분석적 사고는 '발생형 문제'를 해결하는데 탁월하지만, '미래 탐색형 문제'를 해결하는데는 잘 맞지않는다. '코로나 19가 우리 기업에 끼칠 영향력을 기술해보자' 같은 문제를 발생 초기에 정리할 수있는 리더들이 과연 몇 명이나 되었을까?
게다가 수십년간 형성해왔던 루틴한 기획서 포맷, 분석 Tools, 현재 중심의 사고, 소소한 정보의 무시 등은 분석적 사고를 더욱 가속화 시킨다.
따라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리더에게는 나비 효과를 촉발할만한 조그만 단서들에 대한 Attention과, Context에 대한 민감성, 과거로부터의 큰 흐름을 직관하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어쩌면 소소한 정보일 수도 있었던, 보이지도 않는 RNA 바이러스가 생물학적, 의학적 영역을 뛰어넘어 정치, 경제, 사회, 문화...모든 영역을 흔드는 나비 역할을 한 것을 기억하라.
두번째로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다양한 시나리오 생성능력이다. 최근 우주의 기원을 연구하는 물리학 이론 중 하나는 멀티버스 우주론이라는 것이 있다. 휴 에버렛이라는 물리학자가 주장을 하였는데, 그는 임의의 관측이 진행될 때마다, 양자적 분기점이 형성되면서 우주가 갈라진다고 주장한다.
황당무계한 이러한 이론물리학을 믿던 안믿던, 이론의 주요 Concept을 가져와 경영에 대입해본다면, 리더는 상황의 분기점에서 각각의 대안들이 실제 우주로 현현한다는 상상 아래 실천 가능한 시나리오를 생성하고, 의사결정을 준비해야한다.
이를테면 Plan A의 우주일 때는 조직개편은 어떻게 할 것이며, 인력 재배치는 어떻게 하고, HR 전략은 어찌해야하며, Financial Plan은 어떻게 가져가고. Plan B의 우주가 펼쳐질 때는 ...Plan C의 우주가 펼쳐질 때는...Plan C-1의 분기점이 형성되는 우주에는...이런 식으로 시나리오를 짜되, 지나치게 디테일하게 짜지말고 각 분야별로 가용한 Sub Plan의 종류 몇 개를 짜놓고, Plan(A,B,...)과 매트릭스를 형성하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단위조직의 리더들은 자신이 맡은 분야에서 몇 개의 가용 Sub Plan 시나리오들을 생성해서, 전략부서의 Plan들(우주들)과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하게되면, 훨씬 더 생생하게 조직적으로 대응할 수있지 않을까 한다.
또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서는 지금까지 연구되어왔던 AI, 머신러닝, AR 등의 기술들 중 언택트 기반 기술들이 좀 더 우리들의 삶에 가까이 와서 재택근무나 온라인 HR(채용, 교육 등)에 부분적으로 채택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들이 발달할수록 면대면의 기회는 점차 없어질텐데, 결국 리더들이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회의, 보고, 상담, 코칭 장면에서 다소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왜냐하면, 리더십을 관찰할 수있는 많은 부분들이 face to face로 서로 호흡하며 바디랭귀지를 느끼고 해석해야하는데 언택트 기반 기술들로서는 다소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리더들은, 커뮤니케이션의 Noise를 줄이기위하여 지시하기보다는 설득하고, 부하들이 원격으로 떨어져있다 하더라도 협력과 연대감을 가질 수 있도록 다양한 장치로 개입해야한다. 예를 들면, 동료들끼리 협력했을때 가상의 별점같은 것을 서로 주고받고, 연말에 동료 평가를 할 때 이러한 별점 평가를 일정 부분 반영하는 제도도 생각할 수 있겠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라고 하여 세상이 다 뒤집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기존 4차 산업혁명(이 개념도 모호하긴 하지만)의 기술들이 좀 더 가속화되겠고, 글로벌 성장 대신 다소 국지적인 성장 중심으로 비지니스 목표와 범위가 좁혀질 것이다. 그밖에 방역시스템이나 경제 시스템도 손봐지겠지...
어쨋든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본능대로 다시금 모일 것이나(회합, 세미나 등) 이전보다는 다른 양상으로 모일 것이다. 코로나 시절 어쩔수없이 선택했었던 언택트 제도가 알고보니 인건비, 이동비 등 비용을 절감하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더라...라고 경영자들이 인식할 수도 있고.
중요한 것은, 기업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그 사람들 중 리더들이 기업의 방향과 흥망을 결정하는 중요한 존재이기에 우리 HRer들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역시 리더십 육성과 발현에 방점을 찍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