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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엉뚱이 Jun 30. 2020

익명 악플에 관하여

-권력과 커뮤니케이션에 대하여 사유하다

몇 일전 우리 교육팀에 관한 좋지않은 악플이 블라인드 앱에 올라왔다고 누군가 내게 귀뜸해주었다. 이번 하반기 조직개편에 관하여 불만이 있는 소수가 올린 듯했다.


악플러는 아마도 교육팀에서 뭔가 로비를 해서 조직개편에 영향을 준 것이라 판단한 모양이다. (사실, 나도 조직개편 발표 임박해서 들은 내용인데...헐~)


밤에 퇴근하여 부하직원이 캡쳐해서 보내준 블라인드 글을 읽고 처음에는 뭐야, 이게? 하면서 무시하려했다. 하지만, 자꾸 들여다보니 내가 하지도 않은 말,행동에 대해 억측하고, 사장에게 아부를 떠는 조직이라는 둥 인신공격에 가까운 내용이 눈에 밟혀 점차 시간이 갈수록 분노 게이지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치사하게 익명이라는 융단 뒤에 숨어서 저격해? 나쁜 넘들! 정말 나도 블라인드에 가입해서 한 번 맞장떠봐?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그날밤 잠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다음날 지각까지 하고 말았다.




악플때문에 자살한 수많은 연예인들, 근거없이 비꼬는 말때문에 상처받는 이들...결국 이 문제들은 익명성 문제이다.  당당하게  자기 이름을 걸고 나서서 토론도 하고 설득을 하면 될 터인데. 최근 SNS 사회가 발전하면서 야기시킨 소셜 이슈 중에 이러한 익명성은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 한다...라는 주제를 가지고 아침부터 분노의 글쓰기를 시도했다.  


하지만,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이 문제의 본질은 무엇인가? 익명 커뮤니케이션은 왜 익명 커뮤니케이션인가? 그들은 왜 숨어서 이야기하는가? 그런데,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그것은 단순한 커뮤니케이션의 문제가 아니었다.


어쩌면 '권력관계'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익명 플러들은 상대적으로 소수자들이고, 그들이 공격하는 것은 나름 권력자들이다. 그런데, 권력자가 그들에게 '숨어있지말고 맞짱떠!'라고 하는 순간, 팽팽했던 어떤 상태가 쨍하고 깨진다. 실명으로 전환되는 순간, 온라인에서 익명으로 보장받았던 수평적 권력관계가 산산조각나고, 보이지않았던 위계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어느 누가 권력자 앞에서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맨몸으로 자신의 의견을 그렇게 자신있게 내세우겠는가?




필자가 그룹 인사실장으로 발령나서 약 2년동안 본사에서 사장님과 회장님을 지근거리에서 모시고 일할 때였다. 이상하게도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예전보다 많이 언행을 조심하길래 "그냥 하던대로 해요, 왜 그래요?" 하면서 예전처럼 편하게 대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직원들에게도 더욱 감성적 리더십을 발휘하려 애썼다.


하지만, 여전히 나를 대하는 태도나 분위기는 그닥 변하지않아, 어느날 술자리에서 바로 밑 부장 한 사람에게 은밀하게 고민을 털어놓았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인사 실장님은 숨쉬는 것 자체가 권력이에요"

"허걱!"


그렇다. 직책자, 즉, '리더'는 아무리 팔로워들에게 감성적으로 대해주고 마음써주며 수평적 관계로 다가간다 해도 결코 그 관계는 평등하지않다. 구조상으로 그렇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자...그래서, 이번 블라인드에 올린 악플에 대해서도 나름 의미를 바꾸어 생각해보기로 하였다. 비록 내가 개입하진않았지만 금번 조직개편에 대한 뭔가 불만이 조직내 소수자들에게는 있구나...그럴 수있지 흠, 그리고 교육팀에서 사장님 바라기만 하지말고 우리 직원들도 좀 더 세심하게 신경써주세요...그래요, 알았어. 미안해요... 이런 내용으로 순화하여 받아들이니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다.


공동체에서 수용 불가능할 정도의 근거없는 악담과 비꼬기를 하는 악플러들은 걸러내고 처벌해야 한다.  하지만, 나름 어떤 현상과 문제에 대해 이슈를 제기하고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익명 플러들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미워하면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측면에서 바라보면, 그들은 '울부짖고' 있는 것이다. 내 소리도 한번쯤은 들어달라고...



-블라인드 악플당해서 속상했던 6월말의 용모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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