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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디 프로이데를 듣는 아침

by 엉뚱이

10월의 아침 공기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은행나무 잎은 이제 막 노랗게 물들기 시작했지요. 나는 창에 비친 내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3년 전 은퇴 시점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여보, 이제부터는 자기 생활비는 자기가 관리하면 어때요?"


아내는 정중하게, 하지만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마치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말처럼. 통신비, 구독 중인 플랫폼 비용들. 심지어 어머니 용돈까지.


은퇴한 이후 나는 많지는 않았지만 소규모 강연과 책저술로 수입을 올리고 있었는데, 아내는 그 수입으로 충당하라는 것이었죠. 뭐, 그럴 수 있습니다. 정기적으로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이나 상여금이 없으니...


그녀의 목소리에는 원망이나 비난이 없었습니다. 그저 현실을 직시하는 침착함뿐이었지요. 하지만 나는 한 단어에 순간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약값까지?'


ISTP 성향 그대로였습니다. 현실적이고 논리적이며 실용적인 판단. 하지만 ENFJ인 나에게는, 그 말이 조금 다르게 들렸습니다. '함께'가 아니라 '각자'. '우리'가 아니라 '나와 너'. 그 경계선이 유난히 선명하게 느껴졌지요.


물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그날도, 그 이후로도 묵묵히 내 몫을 부담했습니다. 하지만 가끔, 특히 오늘처럼 날씨가 차가운 아침이면, 그 기억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지하철 안에서 나는 그녀의 과거를 되짚어보았습니다. 수십 년간의 결혼 생활이 빠르게 재생되는 영화처럼 지나갔지요. 언제나 현실적이었던 그녀. 감정보다는 계산을, 낭만보다는 계획을 우선시했던 사람. 그런 면으로만 본 아내는, 확실히 따뜻하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현실적'이라는 말로 이해하려 해도, 가끔은 그 현실이 조금 차갑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었으니까요.


사무실에 도착했습니다. 3층 상가 건물, 꼭대기에 3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었습니다. 책상 위에는 며칠 전 산 베토벤 전기가 펼쳐져 있었고, 낡은 책장에는 리더십 이론서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지요. 나는 노트북을 켜고, 베토벤 교향곡 9번을 틀었습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첫 음은 무겁고 웅장했습니다. 낮게 깔린 현악기의 울림이 방 전체를 채웠습니다.


전기를 읽으며, 나는 한 문장에 시선이 멈췄습니다. "베토벤은 고전주의의 완성자이자, 낭만주의의 문을 연 선구자였다." 형식의 정점에 서 있으면서도, 동시에 그 틀을 부수고 새로운 감정의 지평을 연 사람. 그는 교향곡 9번에서 실러의 시 '안 디 프로이데(An die Freude)'를 인용하며 외쳤습니다. 자유와 평등, 인류애, 형제애. "수백만 사람들이여, 서로 얼싸안자!" 얼마나 아름다운 이상입니까.


하지만 다음 페이지를 넘기자, 아이러니가 펼쳐졌습니다. 베토벤의 실제 삶은 그가 음악으로 노래한 이상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는 완고하고 권위적이었으며, 조카 카를을 지나치게 통제하고 간섭했습니다.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는 늘 격렬했고, 그는 종종 고립을 자초했지요. 그의 태도와 그의 음악 사이에는 깊은 골이 있었습니다.


나는 책을 덮고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낡은 건물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맑았습니다. 그리고 문득 웃음이 나왔습니다. 나 역시 다르지 않나 하는 생각에요. 나는 리더십을 연구합니다. 심리적 안전, 변혁적 리더십, 공감과 경청의 중요성을 글로 씁니다. 그런데 3년 전 그날, 그리고 오늘까지도, 나는 아내를 단 한 면으로만 보았습니다. 그녀의 현실적인 태도를 '차갑다', '냉정하다'고 느꼈습니다. ENFJ인 내가 ISTP인 그녀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지요. 리더십을 논하는 내가, 정작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는 경청도, 이해도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행동은 얼마나 복잡한가요. 나는 구석에서 오래된 축구공 하나를 꺼냈습니다. 아들이 어렸을 때 놀던 것인데, 언젠가부터 내 사무실에 굴러다녔습니다. 손으로 만지며 나는 생각했습니다. 축구공은 여러 개의 오각형과 육각형 면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검은색 면, 흰색 면. 각기 다른 모양과 색깔. 한 면만 보고 "이것이 축구공의 전부"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아내에게도 무수히 많은 면이 있습니다. 3년 전 그 현실적인 제안, 그것도 그녀의 한 면일 뿐입니다.


수십 년을 함께 살았습니다. 그녀는 내가 힘들 때 묵묵히 곁을 지켰습니다. 내가 직장에서 좌절했을 때, 말없이 차를 내려주던 손길. 아이들이 아팠을 때, 밤새 간호하던 모습. 내가 은퇴 후 책을 쓰겠다고 했을 때, "한번 해봐. 내가 도와줄게"라고 했던 목소리. 그 모든 순간들이 그녀의 다른 면들이었습니다. ISTP인 그녀는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지만, 행동으로 사랑을 보여주었습니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방식으로. 다만 ENFJ인 내가 원했던 방식—따뜻한 말, 감정적인 공감—과는 달랐을 뿐이지요.


그녀의 3년전 제안도, 어쩌면 그녀 나름의 배려였을지도 모릅니다. ISTP답게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해법이었습니다. 하지만 ENFJ인 나는 그 제안에서 '분리'를 느꼈고, 그것이 마음 한구석을 시리게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도 불안했을 것입니다. 노후에 대한 걱정, 경제적 불확실성. 그녀는 그것을 감정으로 표현하지 않고, 논리적인 제안으로 풀어냈을 뿐이지요.


그때 휴대폰이 울렸습니다. 아내였습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 전화를 받았습니다.


"응?"


"뭐해? 점심 같이 먹을래?"


목소리는 부드러웠습니다. 3년 전의 침착함과는 다른, 평소처럼 담담하고 편안한 톤이었습니다.


"...그래, 좋아. 어디서 만날까?"


"집 근처 된장찌개 집. 12시에."


"알았어."


전화를 끊고 나는 멍하니 휴대폰을 바라보았습니다. 3년 전의 그녀와 지금의 그녀는 같은 사람입니까? 물론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다릅니다. 3년 전 그녀는 현실적이고 독립적인 태도를 보여주었습니다. 어쩌면 자신의 노후에 대한 불안을 정중하게 표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의 그녀는 함께 식사하며 연결되고 싶어 합니다. 두 모습 모두 진짜입니다.


나는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가을 햇살이 책상 위를 비추고 있었습니다. 베토벤의 음악은 여전히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4악장에 이르자, 바리톤 독창이 등장했습니다. "오, 친구들이여! 이런 소리가 아니오!" 그리고 합창이 터져 나왔습니다. "환희여, 아름다운 신들의 찬란함이여."


나는 생각했습니다. 의식이란 끝없는 파도입니다. 바다 표면에는 크고 작은 파도가 끊임없이 일렁입니다. 어떤 순간에는 큰 파도가 솟구쳐 시야를 가득 채웁니다. 하지만 그 아래, 수면 아래에는 무수히 많은 다른 파도들이 숨 쉬고 있습니다. 인간의 의식도 그렇습니다. 지금 이 순간 떠오른 생각, 감정, 판단—그것은 수많은 내면의 파도 중 가장 크게 일렁이는 하나일 뿐입니다. 그 파도가 가라앉으면 또 다른 파도가 솟구칩니다. 아내의 현실적 제안도 하나의 파도였고, 점심의 따뜻한 목소리도 또 다른 파도입니다. 둘 다 그녀의 진짜 마음입니다.


베토벤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는 '환희'를 노래했지만, 동시에 분노하고, 절망하고, 사람들을 밀어내기도 했습니다. 그의 음악은 어쩌면 그가 도달하고 싶었던 이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현실의 그는 그 이상을 향해 비틀거리며 나아가는 불완전한 존재였습니다. 그리고 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리더십을 씁니다. 하지만 나의 일상은 종종 그 이상과 어긋납니다. 그것이 인간입니다. 우리는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계속 변화하고, 모순되고, 다층적인 존재입니다.


축구공은 여러 면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굴러갑니다. 한 면만 있다면, 그것은 평평한 판일 뿐입니다. 사람도 여러 면이 있기에 살아갑니다. 때론 현실적이고, 때론 따뜻하고, 때론 독립을 말하고, 때론 함께하길 원합니다. ISTP인 아내는 논리로 사랑하고, ENFJ인 나는 감정으로 사랑합니다. 그 모든 면이 모여 한 사람을 이룹니다.


나는 시계를 보았습니다. 11시 50분. 일어서서 코트를 걸치고, 사무실 문을 잠갔습니다. 계단을 내려가며, 나는 다시 한번 아내를 떠올렸습니다. 그녀는 현실적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수십 년간 나와 함께 걸어온 동반자입니다. 3년 전의 제안도 그녀의 한 면이고, 점심을 함께 먹자는 전화도 그녀의 또 다른 면입니다. 나는 그녀의 모든 면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축구공처럼.


가을 바람이 볼을 스쳤습니다. 거리는 평온했습니다. 나는 걸으며 생각했습니다. 오늘 나는 아내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베토벤도, 나 자신도. 우리는 모두 축구공처럼, 끝없이 굴러가는 존재들입니다. 그 굴러감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함께 나아갑니다.


된장찌개 집이 보였습니다. 아내가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나를 보고 손을 흔들었습니다. 나는 미소 지으며 걸어갔습니다. 오늘은 내가 밥값을 낼 차례였습니다. 그것도 괜찮았습니다.


2025.10월 어느날, 용모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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