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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모의 추억

- 50 중반에 쓰는 신혼일기, 에피소드 # 2

by 엉뚱이

장범준의 '여수 밤바다'를 많이도 흥얼거렸던 그 해, 우리 부부도 2박3일 여수 여행을 떠났다. 반도의 중앙부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5~6시간 열심히 내닫으면 호랑이 발 끝자락 즈음에 쪽빛 바다가 갑자기 화악~하고 펼쳐지는데, 이곳이 바로 아름다운 항구도시 여수(고울麗, 물水)이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고려의 왕건이 삼국을 통일한 뒤 전국을 순행할 때, “이 지역은 인심이 좋고 여인들이 아름다운데 그 이유가 무엇이냐” 묻자 신하들이 “물이 좋아서 인심이 좋고 여인들이 아름답습니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명을 여수(麗水)라 했다고 전해지는데, 신하들이 말한 물이 좋다는 게 물(水)을 가르키는건지, 다른 의미(?)로 물이 좋다는 건지...흠.


어쨋건, 여수는 '이순신 장군 고을, 갓김치의 마을, 그리고 한려수도' 정도 생각나는, 내겐 생경한 도시 중에 하나이다. 몇 년전에 세계 박람회가 여수에서 열렸고, 김훈 작가의 자전거 여행에서 향일암 가는 길을 멋드러지게 표현한 것은 여수에 가서 알았다.


긴 주행끝이라 무척 배가 고팠다. 우선, 호텔 프론트에 문의하여 대충 가까운 회센터 전화번호를 땄다.


"아, 여보세요? 횟집이죠?"

" 지지직...아 ㄴㄴ 지직..."

"여보세요? 잘 안들리는데...횟집 맞쥬?"

"지직...네 맞 ...지지지직 ㅇ요"


하도 전화기가 감이 안좋아, 내가 있는 곳이 도시가 아니라 시골 읍내인줄 알았다. 어쨋건 간신히 다시 연결이 되었는데...


"거, 뭐뭐 있어요? 회 있나요?"

"지지직...아, 네...ㅎ모ㅎ모"

"그래요, 10만원짜리로 하나 준비해주세요. 둘이 먹을거에요"

"ㅎ모 , 지직, 10만원짜리요? 지지지지직"


횟집 주인이 전화가 지지직 거리는 마당에도 거친 억양으로 하모하모 어쩌구 한다. 뭐 다 알아들었다는 뜻이겠지? 여수가 남도이니까 사투리가 심하군... 갑자기 여수가 남도이긴 남도인데, 전라남도인지 경상남도인지 헷갈렸다. 나는 6시간동안의 운전 피로에 더 이상 생각하기 싫어져서 그냥 횟집으로 출발하기로 했다.


10분 거리 횟집에 도착하니, 이미 이것저것 전채(스키다시)가 한 상 가득히 차려져 있었다. 수족관에서 뜰채를 휘휘 내젓고있는 후덕하게 생긴 아저씨가 주인 양반인 듯 싶었다. 여수 특산물인 여수 밤바다 소주 한 병을 시키고 이것저것 전채를 맛보았다. 그 중에 장어 속살처럼 보이는 게 있어서 후덕 주인에게 물어보았다.


"아저씨, 이거 먹는거에요?"

"하모"

"어떻게 먹어요?"

"끓는 물에 살짝 샤부샤부해서 드세요"

"네, 감사합니다"

20170705_181005.jpg


오호...하얀 속살이 입에서 살살 녹았다.

"여기 정말 좋다. 스키다시로 이런 좋은 샤부샤부도 주고..."

우리는 희희낙락거리며 여수밤바다를 한 병 더 깠다. 술이 불콰하게 올라오니, 밖은 정말 여수 밤바다였다. 살짝 밤비도 내리고 있었다.


한시간여 지나, 전채 요리는 다 끝나가는데...이상했다. 왜 우리가 주문한 회는 안나오지? 벌써 소주 두 병을 마셔 알딸딸해진 우리는 후덕 주인을 불렀다.


"주인아저씨, 우리 메인 왜 안나오는가유?"

"어떤거요?"

"회 말이에요. 회!"

"무슨 회 말이에요?"

"호텔에서 주문했잖아요. 10만원짜리."

"지금 드셨잖아요?"

"엥?"


아니, 아저씨 장난하시는건가? 전채 요리만 잔뜩 깔아놓고 정작 10만원짜리 주요리는 안주고?


"아저씨, 저희 스키다시만 딥다 먹었어요. 10만원짜리 회 주셔야죠?"

"하모, 지금 드신게, 하모 10만원짜리인데요"

"이상한 아저씨네...자꾸 하모하모하시면서 왜 안주셔요?"

"지금 드신 메뉴 이름이 하모에요"

"네???"

"바닷장어 샤부샤부...이게 하모라구요"


어이쿠! 아까 장어 속살 샤부샤부가 10만원짜리 주요리였다구? 그리고 그 이름이 '하모'라구?


후덕 주인 아저씨가 당황한 우리 부부에게 하모에 대해서 한참 설명을 해주었다. 하모는 우리나라 말로는 갯장어 또는 참장어라 불리우는데, 일본인들이 여름철 보양식으로 즐겨 먹는 생선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 내수용보다는 일본에 수출을 많이 했는데, 그때 일본말 하무(물다)에서 하모라는 용어로 변형되어 사용되어왔다고 한다.


잠시 머리를 긁적이고 있는데, 후덕 주인장이 기다리라하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뚝딱뚝딱 뭘 한참 하더니 10여분뒤에 싱싱한 우럭과 가자미를 한 접시 썰어가지고 나왔다. 사람좋은 웃음을 흘리며,
"하여튼 하모를 잘못 알아들으셨구마. 척 보니 두 분 다 서울 촌놈이시고만요. 크크... 이왕 오신김에 풀코스로 드시고 가시구려" 한다.

"아...저, 그냥, 되었는데요...(긁적)"

"돈 더 내라고 안할텅게, 그냥 드숑"


전화로 하모하모하길래 '예 예~'라는 남도 사투리인줄로만 알았던 50대 부부는 다시 한 번 여수밤바다 1병을 시키지않을 수 없었다. 나올 때 죄송하고, 감사하다고 했더니 후덕 주인이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괜찮아요, 여기는 여수니께"


왕건의 일화에 나오는 여수의 어원이 물 좋은 지역이라는 것이, 정말 다른 의미에서의 물이 좋다는 것을 인정하지않을 수 없는...아름답고 정겨운 여수 밤이었다.


여수 또 가실래요? 하모하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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