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에 대해 잠깐 설명하자면, 칼 구스타프 융의 이론을 기반으로 캐서린 쿡 브릭스(Katharine C. Briggs)와 이사벨 브릭스 마이어스(Isabel B. Myers) (모녀간임)가 사람의 심리유형을 16그룹으로 나눈 것인데, 약 80여 년간에 걸쳐 각 Type의 특징을 연구, 분석한 것이다.
MBTI 검사는 사람들의 성격을 장점 중심으로 빠르게 파악하는데 요긴하고, 사례 중심으로 해석을 들어보면 매우 재미있는 검사이다.
우리 부부는 MBTI 심리유형이 정반대다. 또, 자료에 따르면, ENFJ는 1%도 안 되는 희귀형이고 ISTP 여자는 약 3% 정도라 하니, 정말 만나는 것조차 쉽지 않은 부부가 어찌어찌해서 기적적으로 만난 것 같다. 아래 장면은 우리 부부의 MBTI 특성을 살려 재미로 구성해보았다.
Case 1 : 무인도에 표류할 때
-엔프제(ENFJ) 나 : 호들갑 떨며 아내를 위로함. "여보, 우리는 구조될 수 있어! 힘내!"
-잇팁(INTP) 아내 : 백사장에 그대로 누우며 혼자 생각함. '육갑... 그냥 쳐 자'
Case 2 : 공휴일 전날 밤
-엔프제(ENFJ) 나 : 호들갑 떨며 아내를 유혹함. "여보, 화천에서 산천어 축제하고 있대! 빨리 구두 신어!"
-잇팁(INTP) 아내 : 침대에 그대로 누우며 혼자 생각함. '춥다고! 그냥 쳐 자'
Case 3 : 소행성 충돌 하루 전
-엔프제(ENFJ) 나 : 짐을 싸며 아내에게 외침. " 여보, 빨리 와, 동굴 깊숙이 가면 살 수도 있대!"
-잇팁(INTP) 아내 : 다시 침대에 그대로 누우며 중얼거림. '지랄... 어차피 다 뒈져'
어느 날 회사에서 일하던 나는 심한 어지러움증에 쓰러진 적이 있었다. 황급히 직원들이 119를 불러 나를 인근 병원 응급실로 실어갔다. 의료진들이 링거를 꼽는다, 산소포화도를 체크한다 등등 부산하게 움직이는 와중에 직원 중 누군가 우리 집으로 전화를 걸었던 것 같다. 다소 나의 증세가 호전된 틈을 타서 그 직원이 귓속말로 보고하였다.
"사모님에게 전화드렸습니다"
"우웅... 뭘 전화까지 해..."
"그러게 말입니다..."
"응?"
"마침 사모님도 별다른 반응이 없으셔서 말입니다"
"응...(시무룩)"
그날, 귀가한 뒤 아내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내는 깔깔거리면서 중병 아닐 것 같아 그랬다고 했다.(이런, 된장 헐~)
여하튼 잇팁(ISTP) 아내를 둔 남편은 반드시 기억하라! 길거리 지나다니다가 함부로 쓰러지지 말지어다. 아내는 눈 하나 깜빡 안 할 터이니...
아니, 어쩌면 현명한 아내일 수도 있겠다. 엔프제(ENFJ)인 내가 쓰러졌다는 것은 오버가 80% 이상일 터... 아내는 이미 그 사실을 간파한 것 같다. 영악하군...
하여튼, 오버쟁이 엔프제(ENFJ) 나는 20년간 뒷목 잡고 너무 자주 쓰러졌고, 이제 잇팁(ISTP) 아내는 내가 뒤통수가 깨져나가도 안 믿는다. (ㅜㅜ)
아내가 며칠 전 아침 식사를 준비하면서 허리가 아프다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나는 빨리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야 되는 것 아니냐고 또 난리 부르스 호들갑을 떨었는데, 아내는 그냥 침 몇 대 맞으면 된다고 조용히 말한다. 그래도 MRI를 한 번 찍어보는 것이 좋겠다고 하니 그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불현듯, 옛날 내가 당했던 것이 생각나서 아내에게 혹시 꾀병 아니냐고 했다. 약을 올리자 아내는 슬며시 엷은 미소를 지을 뿐 별다른 대꾸 없이 끙~하고 허리를 두드린다. 50 넘으면 다 노화가 되는가~~ 하면서 아내를 놀리며 출근을 했는데, 결국 사달이 나고 말았다. 저녁에 와보니 아내가 정말 쓰러진 것이었다.
아침에 인근 병원에서 MRI 촬영을 하였다. 병명은 척추 전방 전위증...
인터넷을 찾아보니 엄청난 통증이 수반되는 척추 계통의 병이었다. 오버쟁이 엔프제(ENFJ)인 나였더라면 아마 장례식장까지 미리 다 예약해놓고 동네방네 통증을 호소했을 것이었다. 그런데 미련퉁이 아내는 비용이 덜 드는 침 몇 대 맞으며 꾹꾹 참고 있었던 것...
"이렇게 아픈 허리병을 왜 그동안 말 안 했어?"
"말하면 뭐해, 그러면 덜 아파?"
"..."
에구, 마누라야... 미안타. 그동안 아프다고 이야기 안 한다고 아프지 않은 게 아니었을 텐데... 그날 밤 오버쟁이 엔프제(ENFJ) 나는 미련퉁이 잇팁(INTP) 아내의 등허리를 정성껏 주물러주었다는...
활달, 유쾌하면서도 다소 오버하는 유형, 엔프제(ENFJ)와 냉정, 도도하면서도 속 깊은 잇팁(ISTP)의 대화는 잘 맞으면 쾌속선, 안 맞으면 평행선이다. 우리 부부도 적응기간에는 평행선을 많이도 달렸다. 지금은 나름 쾌속선으로 질주하고 있는데, 나름 비결은 이러하다.
가끔은 서로가 반대 유형이라고 생각하고 대화하는 것.
즉, 엔프제(ENFJ)인 내가 잇팁(INTP)이라고 생각하고, 아내는 스스로 엔프제(ENFJ)라고 생각하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거북하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아내가 되고, 아내는 내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자기가 하는 행동에 책임을 지려는 일관성의 심리 원칙으로 인하여 (인지부조화 현상)으로 인하여 저절로 역지사지가 된다.
이제 숲 벌레가 찌륵찌륵 우는 가을이다. 엔프제(ENFJ) 남편과 잇 팁(ISTP) 아내는 인생의 가을 안에서 어느덧 한 마음으로 수렴되어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