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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엉뚱이 Sep 23. 2020

배려의 소통 vs 용기의 소통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의 두 가지 차원 

당나라 태종(이세민)에게는 늘 간언을 서슴지 않는 신하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위징(魏徵)이다. 정관정요에는 그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일화가 나온다. 


“지금 여러 사람이 죄가 없는데도 벌을 받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바친 물건이 좋지 못하다는 이유에서 벌을 받았고 또 어떤 사람은 맛있는 음식을 올리지 않았다며 벌을 받았습니다. 이는 폐하께서 사사로운 욕심에 만족하지 못하고 사치스럽고 호화로운 것을 좋아하시기 때문입니다. <중략> 만약 폐하께서 만족하실 줄 알면 오늘뿐 아니라 앞으로도 항상 만족하실 것입니다. 만약 폐하께서 만족할 줄 모르시면 오늘보다 일만 배가 좋더라도 만족하실 수 없을 것입니다.” 

[출처: 중앙일보] "폐하는 사치스럽다" 당 태종에 직언 날린 겁 없는 신하


당 태종이 툭하면 하인들을 내치거나 벌을 주는 것에 대해 공식적으로 간언을 한 것이다. 당 태종 이세민이 누구인가? 그는 친형인 이건성과 권력다툼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황제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 아닌가? 서슬 퍼런 황제에게 겁도 없이 간언을 일삼는(기록에 의하면 300번 이상) 신하였다.


그 옛날, 무시무시한 군주제 상황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카네기 멜론 대학의 로버트 켈리 교수는 최근 팔로워십의 개념을 주목하였는데, 그는 순응형 팔로워보다는 독립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하는 팔로워십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천오백 년 전, 이미 동양의 위징은 리더를 리드하는 용기 있는 팔로워였던 것이고, 리드를 당하는(?) 리더 당 태종은 관용과 배려의 리더십을 발휘하였던 것이다.




요즘,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을 중요시 여기는 기업이 많아졌다. 아마도  agility를 강조하는 최근 경영 Trend의 일환인 듯 싶다. 이를 위하여 많은 기업들이 직급 축소, 호칭 변화, 회의와 보고 절차 개선 등 기존의 조직 시스템 혁신에 힘을 쏟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조직 시스템만 바꾼다는 것은 혁신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되지 못한다. 이것은 마치 거대한 해양 전체의 상태(온도, 해류, 기압, 공기 등)를 간과한 채, 겉표면이라 할 수 있는 파도만 보고 재해 대비를 하는 것과 같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전략과 시스템의 변혁 밑에 도도히 흐르는 강물, 즉  소통 문화와 분위기를 혁신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간 소통과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 리더에만 초점을 맞추어왔다. 대개 대화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 리더이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대등한 소통을 위해서는 리더십의 강조 못지않게 팔로워십도 강조하여야 한다. 즉, 조직 내에 당 태종 같은 '배려의 리더'들 뿐 아니라 위징 같은 '용기 있는 팔로워'들도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배려의 리더는 어떠한 말이라도 허용하고 경청하며 부하들의 말을 편견 없이 합리적으로 판단, 종합, 결정해야 하고, 용기 있는 팔로워는 어떠한 (사내) 정치적 소구나 사적 욕심 없이 자신의 주장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어야 비로소 수평적 소통 조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리더와 팔로워가 하루아침에 완성될까? 수십 년 동안 피라미드 조직구조에서 상명하복의 전통을 이어왔던 리더가 내일부터 바로 관용과 배려로 팔로워들의 말을 경청하고 공감하라? 또, 숨죽이며 눈치만 살피고 있었던 팔로워들이 침묵의 천정을 깨고 과감하게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한다?


결론적으로 불가능하다.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이것은 조직 내 구성원들의 전체적인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가능하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패러다임이란 토마스 쿤이 말한, '한 시대의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근본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인식의 체계'를 말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키워드가 있다. 그것은 '한 시대'이다. 


패러다임은 결코 '한 시대 내의 점진적인 변화'를 뜻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혁명적으로 바뀌는 것을 말한다. 즉, 수평적 소통 문화로의 변혁은 점진적인 것이 아니라 혁명적 계기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모든 이들이 갑자기 혁명적으로 행동을 바꿀 수 있는가? 과학 철학을 하는 사람들은 이 또한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패러다임이 변하려면 한 시대의 사람들이 다 죽어버리거나, 다음 세대들에게 자리를 모두 내주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실제 과학사에서 종종 회자되는 에피소드가 있다.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이라는 새로운 주장이 1900년대 초 과학계를 강타했을 때,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과거 패러다임 과학자들은 당연히 이를 부정하였다. 하지만, 몇십 년 안되어 지구 상의 모든 과학자들이 이 이론을 긍정하게 되었다. 둘 간의 충돌로 인하여 새로운 패러다임이 승리해서 그렇게 되었느냐고? 아니다. 그저 낡은 패러다임의 과학자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즉, 그들의 머릿속에서 새 이론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그들이 생물학적으로 진짜 죽음을 맞이 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Young 한 신세대 양자 역학자들만이 남아 물리학계의 패러다임이 자동으로 바뀌었다는 일화이다.(우스개 소리인지...)

<제5차 솔베이 회의> 앞줄은 old 한 과학자들, 뒷줄은 young 한 과학자들. 앞줄 과학자들이 '생물학적으로' 사망한 후 뒷줄 과학자들이 주장한 이론들이 주류 이론이 되었다는...



이 상황을 날 것 그대로 대입한다면, 기존의 낡은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다 죽어야(조직에서 아웃되어야?) 수평적 소통문화의 조직이 된다는 건가? 이건 너무 심하다. 그래도 그들도 당시 상황과 패러다임에서 열심히 적응하여 성과에 기여한 인물들이지 않는가. 어쩌면 젊었을 때 그들은, 그때 당시 올드한 사람들이 두려워했던 새로운 패러다임의 신세대였을 수 있다. 이제 새로운 환경에 적합하지 않다 하여 배제시킨다는 것은 다소 무책임하다.


따라서,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필자는 리더의 관점과 팔로워의 관점에서 각각 수평적 소통에 필요한 덕목을 나열해보고, (죽거나 Out 되지 않아도) 조직의 패러다임 전환 시기를 '앞당길 수 있는 방법'을 제시코자 한다.


1. 리더의 소통 관점

<1단계> 팔로워의 수준 파악

리더는 평소 팔로워의 연령, 경험치, 지식, 생각의 깊이(대안의 질) 등의 수준을 파악하고 대화에 임해야 한다. 수준 파악은 학교나 전공, 경력 등 소위 자소서의 기재되어있는 데이터로만 판단해서는 안된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좋은 대학을 나와도 생각의 질이 떨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객관적 스펙은 다소 떨어져도 인사이트를 많이 주는 팀원도 있었다. 특히, 자기 회사의 상황과 맥락을 잘 이해하면서 소통하는 사람이 돋보였다.

<2단계> 위임 vs 코칭 전략

켄 블랜차드는 상황적 리더십 이론에서 부하의 성숙 정도(1단계의 수준)에 따라 리드하는 방식을 달리 해야 한다고 조언하는데, 유능한 팔로워일 경우와 미숙한 팔로워를 구분해서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유능한 팔로워의 경우에는 그냥 위임하고 격려하는 정도의 소통을 하면 되고, 미숙한 팔로워의 경우에는 정도에 따라 코칭이나 참여, 지도 등의 개념을 갖고 전략적으로 소통해야 한다. 

<3단계> 섬김과 배려

섬김의 방향은 윗사람에게만 향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뺀 모든 사람을 향하는 것이다. 엉뚱한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는 팔로워라 할지라도 기본적으로 자존감을 세워주고 더 좋은 의견이 나올 때까지 인내하고 배려해야 한다. 또한, 리더 자신과 의견이 배치된다 하여도, 팔로워의 '의도' 자체는 끝까지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만, 최종 결정은 늘 리더의 몫이다. 다른 의견을 제시한 팔로워를 끝까지 납득시키는 것 역시 리더의 책임이다.


2. 팔로워의 소통 관점

<1단계> 사실 중심

이순신 장군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본 것은 본 대로 보고하라. 들은 것은 들은 대로 보고하라. 본 것과 들은 것은 구별해서 보고하라. 보지 않은 것과 듣지 않은 것은 일언반구도 보고하지 말라."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 중.

리더에게 수평적으로 소통한다는 것은 자기의 감정이나 취향, 의견을 말하라는 것이 아니다. Fact 중심으로 소통하라는 것이다. 또, 근거와 reference를 확실하게 갖고 있어야 한다. 이것은 리더와의 신뢰구축을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신뢰는 수평적 소통의 기반이고, 객관적 fact는 신뢰를 만들어낸다.

<2단계> 한계 인정

자신의 수준에 대해서, 또는 자기가 입수한 정보에 대한 scope과 한계를 분명히 해야 한다. 이 또한 리더와의 신뢰관계를 구축하는데 일조한다. 필자가 경험한 어떤 팔로워는, 자기가 경험하지 않은 분야까지 넘나들면서 늘 '~일 겁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예언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들으면서도 그다지 믿음이 가지 않았다. 

<3단계> 매너 준수

수평적 소통이라고 해서 리더와 맞먹으라는 소리는 아닐 것이다. 겸손하면서도 리더에게 인사이트를 주는, 매너 있는 소통을 하여야 한다. 리더도 사람이다. 따라서 함부로 감정 상하는 말을 한다거나 거친 언행을 하게 되면 리더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서로 겉도는 말만 주고받을 것이다. 이 부분에서 필자가 팔로워 입장에 있을 때, 다소 거칠게 상사들에게 맞선 면이 있어 반성한다. 그때는 용기와 만용을 구분하지 못하였다. ㅜㅜ


이상과 같이 각자의 소통 원칙을 준수하면서 대화를 하면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의 장이 열리고, 일상화되면 수평적 소통 문화로의 큰 흐름이 생길 것이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제언할 것이 있다. 조직 간의 소통 문제이다.


조직은 하나의 초개체(super individual)이다. 즉, 조직은 기능들의 합이다. 또 그 기능들도 더 작은 기능들로 세분화할 수 있다. 조직에서는 R&R(Role&Responsibility)로 이러한 기능들의 생존 이유를 정의해둔다. 그런데 R&R이 명확하게 나뉘지 않게 되면 조직 간 소통의 큰 걸림돌이 된다. 교육팀이 있는데 인사팀에도 일부 교육 기능을 가져간다면 두 팀 간에 알력과 갈등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소통이 안된다.


그래서 부문 간의, 기능 간에 명확한 직무분석을 통한 R&R의 정의가 팀 수준의 소통에서는 필수적이다. 그런데, 정상적으로 R&R이 정의되어있다 해도, 탁탁 무우 자르듯이 부문별로 경영 이슈(경영 이슈는 늘 기능을 뛰어넘는 복합적인 문제들로 가득 차 있다)가 터져 나오는 것이 아니므로 기능 간의 협업은 필수이다. 


협업=소통이고, 큰 단위에서 협업=소통=조율이다. 그런데, 조율은 차상위 관리자들만이 하는 것이 아니다. 각 기능, 단위별로 서로 역지사지의 정신으로 상대방의 부서를 이해했을 때 최상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조직은 조율이 잘되면 시너지가 발생하고, 안되면 쓰나미가 발생한다.  

정리하자. 수평적 소통은 배려의 리더십과 용기의 팔로워십이 어우러져 만들어낸다. 조직 간의 소통에서는 조직 기능의 명확한 R&R의 정의와 그것을 조율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노력들이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의 문화를 이끌어내는, 새로운 소통 패러다임을 앞당기는 방법이라 생각하며 글을 맺는다.


- 9월말 용모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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