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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이라는 세숫대야 '웅덩이'를 만났을 때

때론 각색도 필요한 공감


공감은 연극적 능력입니다.

그래서 때론 각색 능력도 필요한 작업입니다.


© nate_dumlao, 출처 Unsplash



비가 많이 내리면, 길바닥에 일시적으로 웅덩이가 생깁니다. 어렸을 땐 그게 그렇게 재밌습니다. 웅덩이 장점은 깊지 않아 그리 위험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손이나 발로 얼마든지 '쿵쿵' 장난칠 수 있어서, 그 옛날 라떼 모험가 아이들에겐 그만한 놀이터가 없습니다. 그러다 웅덩이를 더 이상 놀이터로만 생각하지 않는 시점이 찾아옵니다. 놀던 아이 관점에서 보면, 안전하다고 믿었던 물웅덩이의 배신 때문입니다. 분명 여러 날 중 이런 날이 있었을 겁니다.


그날도 어김없이 많은 비로 여기저기 웅덩이가 생겼겠죠. 모험가 라떼 아이는 어김없이 신나게 그런 웅덩이를 찾아 첨벙. 그런데 하필 발을 내디딘 그 웅덩이가 많은 비로 질퍽한 진흙을 넘어, 이미 늪처럼 변한 거죠.


그 사실을 모른 채, 겁 없이 첨벙한 아이는 어찌 되었을까요?

예전엔 참 안전하고 재밌었던 웅덩이. 그래서 겁 없이 발을 담근 건데, 늪으로 변신해 모험가 아이의 발목을 잡았으니... 사실 따져 보면 웅덩이 잘못은 없는데, 굳이 화풀이를 하고 싶다면 많은 비를 내린 하늘을 탓해야 하지 않을까요?


하늘은 무사하고, 웅덩이는 모험가 이이의 미움을 덤터기 씁니다. 이런 경험이 어떤 아이에겐 앞으로 조심해야지 정도의 가벼운 교훈이 되는 별거 아닌 경험일 수 있으나 모험가 아이에겐 아니었나 봅니다. 뿅 하고, 순식간에 졸보 얌전이로 변신해 버립니다. 유독 그 웅덩이 앞에서 만요. 그 후에도 계속, 누가 봐도 얕은 세숫대야 웅덩이인데, 그 앞에서 얼음 쫄보가 되는 모험가.



© anniespratt, 출처 Unsplash



역할 교체의 순간은 이렇게 느닷없이 순식간에 찾아옵니다.



'왜 저래?'



우리 주변에서 이런 쫄보를 만나는 건 너무 쉽습니다. 거울만 봐도 있고요. 명칭만 다를 뿐, 누구나 각자의 세숫대야 웅덩이가 있으니까요. 그 앞에서는 얼음하고 쫄보가 돼버립니다.



'내 세숫대야 웅덩이는 뭐지? 누구지?'



그 숨은 그림을 찾으면, 그게 자기 인식이죠. 나에게도 웅덩이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쫄보에서 모험가로 다시 역할 교체할 수 있다면, 그게 셀프 리더십입니다. 또 순식간이 전혀 다른 행동을 보이는 사람을 봤을 때, 이 세숫대야 웅덩이를 떠올려보면 어떨까요?



'그럴 수 있지! 나도 그럴 때가 있으니까!'



그 세숫대야 웅덩이가 무엇인지만, 볼 줄 알면,  또 그것을 약점으로 보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을 진짜 이해하고, 공감하는데, 참고서로 활용할 줄 안다면,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력, 내 리더십 품질은 달라질 겁니다.






보통 이 '웅덩이'는 '사람'일 때가 많습니다.

살면서 우리는 그런 세숫대야 웅덩이 같은 사람을 만납니다. 겉모습은 안전해 보이지만, 늪처럼 느껴지는 사람 말이죠. 그런데 그 사람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먼저 봐야 할 건, 내 기억 속 세숫대야 웅덩이 경험들입니다.


겁내지 마세요. 그 웅덩이의 깊이는 그래봤자 세수대야니 까요. 점프해 버리는 순간 나는 다시 뿅 하고 모험가로 변신할지 모릅니다.



© philhearing, 출처 Unsplash




어디로 점프할 것인가도 관건이네요.

서로에게 안전한 사람이 될 순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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