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모여 사회를 이루면 함께 지켜야 할 약속들이 정해지고 경험들이 모여 암묵적 합의가 형성되며 공동의 삶의 방식이 정착된다. 우리는 이것을 문화라고 하지만 특별히 관리되어야 하는 대상이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문화는 생명에 꼭 필요하지만 특별히 신경 쓰지 않는 공기와 같이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과 관계, 삶의 방식 등 모든 것이 대상이고 그 자체이며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해서 딱히 살아가는 데 큰 어려움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로 경영자의 철학과 구성원의 특성, 일을 하면서 합의된 방식, 대외적으로 형성된 이미지 등에 의해 기업 고유의 문화가 형성되고 굳어지게 되는데 이것 또한 딱히 신경 쓰거나 관리하지 않는다고 회사를 경영하는 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우리 기업은 많은 변화를 요구받기 시작했으며 온몸으로 변화를 감당해 내고 있다. 아마도 피부로 느끼는 대표적인 것을 꼽으라고 한다면 누구라도 '한번 직원은 끝까지 간다'는 고용보장의 붕괴와 글로벌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경영방식의 변화일 것이다. 기업들은 좋든 싫든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생존을 위한 방편으로 기업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제 거의 대부분의 기업들이 적어도 말로는 기업문화의 중요성에 대해 이의를 달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창업 초기부터 어떤 문화를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고 설계하는 기업들도 적지 않고 간혹 기사를 통해 독특한 기업문화를 가진 회사로 소개되기도 한다.
대한상공회의소의 조사 결과(2016년)를 보면 직장인의 94%는 기업문화가 성과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현재 자신이 속한 기업의 문화가 지속될 경우 91%가 경쟁력이 악화되거나 정체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다시 말해 직장인들은 기업문화가 기업의 지속성장과 경쟁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체계적이며 조직적인 기업문화, 특히 중소기업에서의 현실은 아직도 남의 이야기로 밖에 들리지 않는 이유는 왜일까?
기업문화에 대한 오해와 편견
첫 번째는 기업문화는 어느 정도 규모가 있어야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IT 기술이 발달하고 업무환경에서 인공지능의 역할이 커진다 해도도 기업에서 일어나고 만들어지는 모든 것은 어떤 식으로든 사람과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에 기업문화의 근본은 사람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기업문화 활동이 대기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어느 정도 외적 성장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구성원이 적은 중소기업에서는 ‘우리는 몇 명되지도 않는데 기업문화는 아직 시기상조야!’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중소기업은 창업자의 아이디어와 기술, 인적 네트워크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위기를 겪으며 어느 정도 안정단계에 이르게 되면 더 큰 목표와 성장을 위한 계획을 수립하는데 이때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지금까지는 조직의 경쟁력이라기보다는 창업자 개인의 경쟁력이 성장의 축이었기 때문에 전략도 명확했고 의사결정도 신속하게 이루어졌지만 이제부터는 그 중심이 개인이 아닌 조직이 되어야 하는데 CEO는 여전히 자신의 성공 경험이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창업단계에의 전략을 커진 조직에 그대로 적용하여 한다. 기업의 경영전략은 조직의 규모에 적합하게 변모해야 함에도 말이다. 중소기업의 창업자는 개인의 경쟁력을 조직의 경쟁력으로 전환시키고 그것을 통해 성장 기반을 준비해야 한다. 이런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더 큰 목표와 성장을 위한 계획은 어찌 보면 무모한 도전이며 실패를 계획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중소기업은 기술이 경쟁의 원천이며 최소의 인력으로 최고의 성과를 만들어 내야하기 때문에 사람의 중요성이 대기업이나 중견기업 보다도 더 크다할 수 있다. 그런데 어느 정도 규모가 있다는 중소기업의 경우에도 기업 활동의 노하우가 회사의 자산으로 축적되는 것이 아니라 직원 개인의 역량만 만들어 주는 경우가 정말 많아서 중요한 역할을 하던 직원이 퇴사를 하게 되면 상당기간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CEO나 직원 개인의 경쟁력을 조직의 경쟁력으로 전환시키는 것은 기업의 지속경영에 필수요소라 할 수 있으며 어느 한 개인이 아니라 기업문화 차원에서 조직화되고 뿌리내리게 해야 한다. 이것이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이 이제라도 기업문화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두 번째는 기업문화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기인한다.
1년은 고사하고 한 달 앞을 걱정해야 하는 재무여건, 채용의 어려움, 높은 이직률, 만족스럽지 못한 복지와 급여, 열악한 R&D 환경 등등.. 중소기업이 처한 현실에서 매출과 직접 관련이 없는 기업문화에 신경쓴다는 것은 그 동안 귀에 못이 밖히도록 들어왔던 ‘선택과 집중’에도 맞지 않는 배부른 소리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기업문화를 직원의 복지 정도로만 알고 있기 때문에 드는 근거 없는 걱정이다.
기업문화는 생산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회의하는 방식, 일을 처리하는 방식, 타 부서와 연계된 업무처리 프로세스, 직원간의 소통, 회식, 창립기념 행사, 사무공간의 가구 구성과 배치, 청소상태, 출퇴근 문화, 기계나 장비의 정비 방식 등등 기업문화의 대상이 되는 것은 무수히 많으며 지금 이순간에도 일어나고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다. 직원의 복지나 급여 등과 관련된 것은 사실 지극히 일부분이다. 이렇게 보면 금전적 투자 없이도 생산성을 높일 수 있고 개선을 할 수 있는 것들이 보일 것이다. 중소기업은 이런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중소기업이 기업문화 정립에 유리하다.
경영컨설팅이나 교육을 하는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것이 있다면 부정적인 학습효과다. "어! 이거 예전에 교육받은 적 있는데 우리 상황 과는 맞지 않아!", "예전에 해 봤는데 별 효과를 보지 못해 중단했던 거야!" 등등 그동안 이런저런 시도를 통해 학습된 부정적 경험은 고정관념을 고착시키고 생존을 위한 몸부림 조차 꼼작 할 수 없도록 발목을 잡는다. 이런 시도나 경험이 적은 중소기업이 마음만 먹으면 바른 기업문화를 정립하고 정착시키기에 더 유리한 입장일 수 있다. 실제로 중소기업의 교육이나 컨설팅을 해보면 CEO나 임원급들은 이미 한 두 번 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는 내용들도 직원들은 처음 접하는 것들이 많고 몰입도 또한 상당히 높다.
사람이 중심 되는 기업문화
1762년 설립된 영국의 BARINGS 은행은 파생상품 딜러 1명의 부도덕성에 의해 200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1995년 단돈 1파운드에 ING로 합병되었다. 회사의 가치에 반하는 개인의 욕심이 얼마나 큰 위험을 불러오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이처럼
사람은 기업의 가장 큰 자산이며, 경쟁력의 원천이지만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되기도 한다. 기업은 다양한 환경과 경험을 가진 개개인이 모여 공동의 목표를 위해 모인 집단이다. 환경과 경험이 다르다는 것은 삶의 가치가 다름을 의미하는 것으로 직원이 100명이면 100개의 문화가 존재한다. 기업의 입장에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역량을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서로 다른 것을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게 된다면 목표 달성은커녕 불화와 갈등으로 몸살을 앓게 될 것이다. 각자 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지만 조직의 성과를 위해 하나의 방향을 바라보게 하고 지켜야할 약속을 지키며 회사와 개인, 개인과 개인이 상호 WIN-WIN 할 수 있도록 하거나 반대로 기업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도 사람에 의해 결정된다.
경영환경에 대응하는 조직의 모습을 래프팅과 조정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상호 보완적 관계이지 배척 관계가 아니다. 방향을 정하고 역량을 집중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조정과 같은 조직력이 필요하고 전략을 수립하고 수행해 나가는 데에는 래프팅과 같은 조직력이 적합하기 때문이다. 기업문화를 관리한다는 것은 바로 조직에서 필요한 두 가지의 모습을 연결시키고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며 여기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대상이 바로 사람인 것이다.
기업문화와 경영성과
기업의 모든 경영할동은 경영성과와 관련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면 이처럼 중요하다고 하는 기업문화가 과연 경영성과와 관련이 있을까? 존 코터와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조사에 의하면 추구하는 가치가 명확한 기업은 그렇지 않은 기업에 비해 수익이 4배 높고 주가가 12배 높으며, 일자리 창출 비율이 7배이고, 이윤 실적이 750%나 높다고 한다. 이렇게 거창하게 접근하지 않더라도 일하는 방식을 효율화하고 긍정적인 소통을 하며 협업 프로세스 등과 같이 늘 하고 있는 것들의 개선만으로도 지금과는 다른 경영성과를 보게 될 것이다.
정리하면 중소기업은 조직 규모가 작기 때문에 사람에 의한 영향력이 직접적이고 크게 작용하므로 건강한 기업문화에 대해 더 많은 관심과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기업문화를 만드는 것은 여유가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구성원 모두가 동의하고 공감할 때에 변화의 추진력과 실행력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