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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틀란 Jan 20. 2021

연주자

그들의 시간, 사랑

"안돼. 여기 스튜디오안에 두고 가야 돼."

"왜? 대기실에서 한번 더 맞춰보자."

"온도가 달라서 조율해 놓은 거 흐트러진다고."

"아..."


라이브연주를 들려주러 온 첼리스트와 피아니스트가 주고 받는 대화다. 리허설을 하고는 한번 더 연습하자는 피아니스트의 말을 첼리스트가 잘라버린다. 첼로의 현을 스튜디오 내부 온도에 딱 맞춰 놓아서 추운 대기실로 갖고 가면 안된다는 거다. 


현악기의 특성상 온도와 습도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여름날 해변음악회에서 연주한 현악기들, 죄다 소금기 머금어 손봐야 한다고 한숨쉬는 연주자들을 본 적 있다. 아예 해변음악회에는 가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었따. 그때는 유난스럽다 싶었지만 자주 만날 기회가 있다 보니 이제는 이해한다.   


연주자가 악기를 닮아갈 때도 있다. 악기와 한몸처럼 살다 보면 서로 사람인지 악기인지 구별을 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연주자가 다루는 악기인지, 악기가 끌고 가는 연주자일지, 서로 상호작용하겠지만 연주자가 악기에게 유난히 의지할 때도 있다. 이럴 때 만나면 본인도 마치 악기처럼 예민해진다.  


방송이니 연주중간에 인터뷰도 섞어서 진행된다. 먼저 준 원고에 의거해서 질문을 던지면 쉽게 대답을 하지 않을 때가 있다. 금방 연주 끝내고 말하기가 숨가쁠 때도 있지만 평소에 말도 잘 하던 사람이 뭔가 머뭇거리거나 

자꾸 질문을 피하려는 답을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악기의 예민함이 연주자에게 전이(?) 된듯 느껴진다.


이전같으면 방송 끝나고 물어라도 봤겠지만 묻지 않아도 이제는 알 것 같다. 아, 연주자가 악기에게 더 힘을 주고 있구나. 연주자가 악기자체가 되고 싶은 때인지도 모르겠구나. '악기의 시간'인 거지. 예민함은 예술가의 권리같은 것일까.


가끔 어디서나 어떤 악기로도 소탈하고 시원하게 연주를 하는 사람을 만날 때도 있다. 성격탓도 있고 자신감에서 그럴 때도 있겠지만, '아, 지금 저 예술가는 연주자의 시간을 지나고 있구나' 싶다. 


두 사람이 함께 뭔가를 이루는 일 못지 않게, 사람과 악기가 이루는 일도 만만치 않다. '혼자 악기를 연주한다'고 쉽게 말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혼자가 아니다. 연주자는 혼자가 아니라 두 존재로 무대에 선다. 사람과 악기! 

두 존재가 함께, 서로의 시간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세상과  혹은 서로를 생각한다. 어쩌면 악기와 사람의 사랑같은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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