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생방송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틀란 Jan 22. 2021

쇠주 한잔

오늘밤 그대에게, 쇠주한잔의 실존

3000님, 친구분과 통화중에 오늘이 한국에서 코로나 확진자 발생한지 1년되는 날이라니,

자기는 이혼 2주년이라고 쇠주한잔 사 달라셨다고요?

오늘 돈 벌어서 내일 자기 술 사 달래서 어이없었다고요.


그렇죠. 택시기사 수입 뻔한 줄 알면서,

오늘 벌어서 내일 자기 술 사달라니,

그것도 이혼 2주년이라고...

얄밉기는 하네요.

그래도 친구사이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죠.

저는 부럽습니다.

그런 이야기도 툭 터놓고 주고 받을 수 있는 사이라니.


3000님, 제가 부탁드리는 건데요. 내일 친구에게 쇠주한잔 꼭 사주시면 안될까요?

마누라는 떠났어도 사나이 우정은 살아있다고 막 너스레도 떨어주세요.

저는 어쩐지 자꾸 그 친구분,

외롭기도 하고 허전하기도 해서 그런다 싶거든요.

눈치보시고.

친구분 마음이 안정적이면 새 이성친구도 소개해준다고 호언장담 하시고요.

세상에 딱 한 사람만 내편이 돼 줘도

진짜 딱 살맛이 날 수 있더라고요.

어른되고 나니, 진짜 그런 사람 주변에 별로 없어요.

다 나더러 책임지라고만 하고요.


혹시라도 술주정이라도 하면, 엄마거니 하고 받아주시고요.

아셨죠? 착한 일 하신다 여기고...


그렇게 클로징을 끝낸 다음날,  

영화이야기를 맡아 하시는 평론가는 오이소주를 좋아한다면서

<델마와 루이스> 이야기끝에

3000님 때문에 노래 선곡을 바꿨노라 하신다.

Don't look back it, o.s.t를 틀려다가

Part of Me, Part of You로 바꾸셨단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면서 '서로의 일부'라고 자부할 수 있는 건

'소주 사달랄 수 있는 친구' 가 있기 때문일거라고.


'오늘부터 너는 절대 혼자 걷지 않을 거야'라는 가사처럼

사막한가운데까지 함께 걷는 친구가여러분은 있냐고도 물었다.


잔잔한 감동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밤길,

소주한병 사오라는 문자에 편의점에서 한병 샀다.

파충류를 애음하는 터라, 좀 비싸다. 1650원.

살때마다 비싸다는 생각에 온 동네를 돌며 가격을 알아보기도 했다.

동네 곳곳의 편의점에서 조금씩 다르게도 가격을 매기는구나...

아무리 싸도 1500원이었다.


엘리베이터안에서 가방끝에 삐죽 나온 소주를 보고,

윗층 사는 모녀가 웃음과 말을 건넨다.

마스크 쓴 채로도 대화가 가능하니 아직은 이웃사촌은 있는건가.


"오늘밤, 한잔 하시나봐요. 양서류 좋죠."

'호, 파충류로 착각했네. 양서류야, 양서류.' 속으로 무릎을 치다가 말한다.


"근데 편의점은 비싸서..."


"그러게요, 하하하"

대형마트에 가서 1150원대에 사오기도 했다. 그런데 마트장은 아다시피 많이 사오기 십상이다.

10병쯤 묶인 걸  사오면 하루에 한병 마실 것도 한병반, 두병으로 늘어난다.

이것도 견물생심일까 싶어서 포기했다며 잠시 떠들었다.

두사람 폭소가 터진다. 눈을 맞추며 생전 처음 웃는 듯이 웃는다.

집집마다 다 비슷하다는 이야기다.

뭔가 빡-하고 오는게 있다. 이것이 살아있는 느낌이랄지,

이마를 스치고 가는 어떤 에너지랄지,

사르트르처럼 '구토'가 느껴지지는 않지만

세상 속 나외의 사물들, 사람들의 존재가 확인되기 시작했다.


재빨리 현관앞 숫자를 누르고 신발도 던지듯이 벗으며

뛰어들었다.


"보이소. 쇠주로 내가 살아있는 것 같다, 진짜로."


"문디, 쇠주는 달다고 마시지도 않는 주제에."


"우쨌든 사왔잖아, 내가 쇠주를."


쇠주한잔의 감동은 청취자의 문자에서 시작해 예리하고 친절한 출연자의 배려,

그리고 같은 동 아파트의 '이웃사촌'을 확인하는 일까지 세트로 묶여진다.


아직은 쇠주한잔으로 실존을 생각하는 존재에 불과하지만

'살아있구나, 살아봐야겠다' 싶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연주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