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생방송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틀란 Jan 19. 2021

매일 매일 새로워서

오래된 진행자가 사는 법

"뭐 좀 다른 거 없어?"

"몇 년 전 00 생각에 나온 글인데..."

"오프닝, 요즘 잘 나가는 그 작가 책에 나오는 걸 너무 티나게 베껴 쓰셨어요."

"사흘전에 나간 노랩니다."


방송을 하다보면 생기는 병증이 있다. 반복되는 꼴을 못본다. 늘 새롭거나 달라야 마음이 편하다.

코너 바꿀때마다 힘들다. 잘 까먹기는 해도 기억에 남아있는 것들이 자꾸 괴롭힌다. 그건 지난번에 하지 않았냐고. 이 일 시작한지 얼마 안되는 동료들과 함께 하면 더 하다. 


아주 그냥, 새로운 거 전혀 없는 아이디어를 신선하다고 주장하면 처음에는 어이없다가 나중에는 포기한다. 방송은 협업이라잖나. 처음에는 말도 하고 언제 어디서 했노라고 말했지만 다수결로 진다. 다음부터는 말하지 않게 된다. 나혼자만 지겨우면 되니까. 하지만 방송듣는 청취자들은 어떨지...재탕, 삼탕, 탕 탕 탕...

이제 하다 하다 안되면 목소리를 바꿀까. 오래 있던 방송사에서는 개편때 진행자들을 죄다 돌렸다. 프로그램은 가만히 두고 진행자만 자리를 옮겼다. 한동안은 먹혔던 것 같다. 


싫증도 잘 내고 지구력도 없는 사람이 오랫동안 같은 일을 하는 이유가 뭔지 스스로 분석해 본 적이 있다. 생계형 방송인이기도 하지만 성격상 벌써 때려치우고 다른 걸 하고 있어야 맞는데, 지금까지 있었던 이유는 날마다 새로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언제부턴가 날마다 새로워야 한다며 동료에게 호소하던 병증은 없어졌다. 원고를 읽는게 아니라 내 이야기로 소화가 되기 시작했던 때부터였나 보다.

'이작가가 쓴 원고잖아.', ' 박피디가 만든 코너잖어.', ' 섭외는 내가 안했잖아.'

이런 생각들이 사라졌다. 마이크앞에 앉아서 마지막으로 마무리해야 하는 건 나였으니까. 


왜 이런 원고를 썼는지 작가의 마음이 들여다 보이기 시작했다. 왜 하필 이 노래를 선곡했는지 피디의 의도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마음을 얹었다.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려면 시간이 걸렸지만, 해석을 달리 하기는 그래도 어렵지 않았다. 몇년전과 같은 코너도 다른 느낌으로 해석해서 말하다 보면 진짜 새로워진다. 노래 한곡을 들어도 어디서 듣는지, 언제 듣는지로 맛이 다르다. 그래, 여전히 방송은 매일 매일 새로운 거 맞다. 


드라마나 영화는 연습할 시간이라도 있지, 라디오방송은 대부분 소위, '따끈따끈'이라고 표현하는, 그러니까, 생방송 5분전, 10분전에 원고가 나올 때도 있다. 그게 아직은 짜릿하다.  오늘은 또 어떻게 새롭게 접근해 볼지.   


매거진의 이전글 머리는 못박는데 쓰는 거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