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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틀란 Jan 15. 2021

머리는 못박는데 쓰는 거야?

"원고 좀 봐 주세요."

"너, 이거밖에 안되는 인간이었어? 실망이다."

"야마가 좀 있게 안되냐?"

"예? 그게..."

"라디오시사인데 이렇게 미적지근하게 말하면 누가 듣겠냐고오?"

"또 항의전화 오면요."

"그걸 걱정하면 어떻게해, 미치겠다, 미치겠어. 진짜, 생방송 30분전인데, 이러고 있다.

 너, 머리는 못박는데 쓰는 거야? 머리 두고 뭐 하냐?"


머.리.는. 못.박는데. 쓰.는. 거.야?


평생 잊을 수 없는 대못멘트다.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 남은 대못. 쾅쾅쾅.

지금 만약 일터에서 이런 이야기를 서슴치 않고 하는 상사나 누군가가 있다면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다. 어쩌면 인권위원회로 갈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때는 혼자 속앓이만 하거나 몇몇 동료들과 술로 마셔버렸다. 그렇고 그런 수많은 말들. 당사자들은 했는지도 모를 말들. 이른바 '언어폭력'이라고 부르는 말들이 언어를 도구나 무기삼아 사람들에게 팩트와 감동을 전달하는 일터에서는 더 심하게 사용되었던 '옛날'이 있었다.  긴장감이 심한 일터일수록 말로 서로 주고받는 '흉기'들이 많았다.


이렇게 사람에게서 받은 보이지 않는 가슴의 대못은 몇가지형태로 변화진화한다.

첫째, 조금 건강하게 변화하는 경우다.

드라마 <도깨비>의 김신 가슴의 칼처럼 뽑아주는 신부가 나타나는 것도 아니어서 스스로 뽑아야 할 경우,

모진 마음 먹고 일에 미친다. 실력을 쌓아서 당사자에게 인정받거나 그의 상사에게 칭찬받거나 , 혹은 더 나은환경의 일터로 가게 되면 대못크기가 좀 작아진다. 다른 못이 박히기도 하니까 조심하게 된다. 그러니까 내 머리는 적어도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하지 않고 내 발전을 위해 쓰게 된 걸 확인한다.


둘째, 나쁘게 변화하는 경우다. 자기가슴에 박힌 대못을 붙잡고 울며 불며 원수갚듯 일머리가 생기면 꼭 자신같은 후배나 다른 동료가 나타나는데 그 못을 그사람에게 옮겨주는 경우다. 그런데 순간은 짜릿할지 모르지만 폭망한다. 왜냐하면 내 가슴에 대못은 그대로 있고 다른 이의 가슴에 새로운 대못을 박아 넣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렇게 미운 그 사람이 되어버렸으니까. 내 머리는 진짜 남의 가슴에 못박을 때 썼다. 쾅쾅쾅.

더 나쁜 경우는 그 대못을 깊은 곳에 숨겨놓고 꺼내서 어떻게든 처리하려 하지 않는 경우다. 그 못은 내가 흘린 눈물로 녹이 슬어 부작용으로 상처가 더 깊어지거나 날의 서슬이 퍼런채 그대로 박혀 가슴을 후빌 수 있다. 숨기기기를 조심해야 한다. 자칫 이생은 망할 수 있다.


세째, 바람직한 경우가 있다. 내 가슴에 대못을 살살 달래서 조금씩 뽑아올린다. 괜찮아. 괜찮아. 처음에는 누구나 다 그래. 스스로 달랜다. 그리고 어렵지만 누구의 탓도 아니란 것을 깨닫는다. 그가 아무리 못을 박아 넣어도 받는 내가 못으로 여기지 않고 솜사탕으로 여기면 바로 빠져버리거든. 억지스럽지만 빨강머리 앤을 따라해도 좋다. 뭐든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기. 이렇게 되기까지는 부작용도 있다. 자존감도 없는 바보멍충이로 여겨지거나 공중부양될 정도로 수양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리고  대못박은 사람은 잊어버려야 하는데, 참 어렵다. 그사람도 자신의 머리로, 자신의 능력으로 안되는 게 있는 걸 발견하면 그게 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기억은 결코 잊지 않아서 필요할 때 들여다 보고 반성한다. 가장 중요한 것 한가지. 남에게 똑같은 행동을 절대 하지 않으리라 결심해야한다. 내 머리는 못박을 때 쓰는 게 아니라 따듯한 세상을 창조하려고 있는 것이니까.


뭐랄까, 사실은 이런 대못같은 멘트들이 나를 키운 것도 인정한다. 인간이란 동물이, 늘 부드럽고 달콤한 것만으로는 자라지 못한다. 이것저것 다양한 음식, 골고루 잡식해야 하고 경험도 많을수록 좋다지 않나.

문제는 예기치 않은 순간에 찾아와 상처를 주고 혹은 받고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몸부림치며 사는게 인생이라니, 허무하다. 지나서 보니, 되도록 말로 입은 상처,  가볍게 받아주고 가볍게 치유하려고 노력하는게 답이다.


오늘도 생방송 현장에서 독한 말로 서로의 가슴에 대못 박지 않도록 주의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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