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멍’을 좋아한다. 동네하천을 거닐며 흐르는 물소리를 듣는다. 냇물소리만큼 편안한 노래가 없다. 물이 돌들과 어울려 부르는 노래다. 졸졸졸, 좌르륵 좌르륵, 둘두르르둘…. 한참을 서 있다. 계곡이나 강물소리는 너무 세다. 넷물소리가 너무 편안해서 저절로 노래가 흥얼거려진다. <시냇물>이라는 동요다.
♪냇물아 흘러 흘러 어디로 가니 강물따라 가고 싶어 강으로 간다. 강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넓은 세상 보고 싶어 바다로 간다♪
이 시냇물들도 그럴까 싶다. 그저 촐랑촐랑 따라가고 싶어 강으로 가다가도, 강을 지나면 세상을 더 보고 싶은 욕심에 바다로까지 갈까. 마음이 복잡할 때는 물 쳐다보는 일이 특히 좋은데, 예민해져서 들으면 시냇물도 어느새 그냥 흘러가거나 노래만 들려주지는 않는다.
느릿느릿 가다가도 흙과 모래, 자갈이 쌓인 곳을 지나칠 때면 꽤 크고 작은 모험을 감내하기도 한다. 소리도 달라진다. 화들짝 놀래며 가기도 하고 휘몰아치기도 한다. 마치 땀을 훔치듯 한숨 쉬며 노닐기도 하고 돌과 모래, 물풀들외에 바람도 친구하고 싶은지 나즈막히 휘파람 소리로 바람흉내를 내면서도 간다.
냇물들의 모험을 말하자면, 낙차 심한 턱을 내려서면서 작은 소용돌이같은 여울로 빨려들기도 한다. 폭이 좁아질 때도 있고 갑자기 바닥이 얕아져서 세게 흐른다. 배영하던 냇물들이 정신없이 떠내려간다. 눈 주었던 물친구가 재빠르게 시야에서 사라진다. 아쉬워하며 발길을 돌리다가도 자꾸 뒤돌아본다.
한돌작사작곡, 한영애가 노래한 <여울목>이 떠오른다.
맑은 시냇물 따라 꿈과 흘러가다가/어느날 거센 물결이 굽이치는 여울목에서
나는 맴돌다 꿈과 헤어져 험하고 먼 길을 흘러서간다
덧 없는 세월 속에서 거친 파도 만나면/눈물겹도록 지난 날들의 꿈이 그리워
은빛 찬란한 물결 헤치고 나는 외로이 꿈을 찾는다
그리운 냇물을 뒤로 하며 천천히 따라 부르기도 하고, 가만히 내마음 쳐다보기 좋은 노래다.
노래 만든 사람의 인생이야기일까 싶다가도, 누구나 다 겪는 여정같기도 하다.
우리 삶은 어쩌면, 마키아벨리의 말처럼, ‘비르투(virtu)’와 ‘포르투나(fortuna)’의 조합으로 흘러간다. 어린 날 마냥 편안하고 꿈을 키우며 흐르기만 해도 되는 시절을 살았다면 그건 축복이다. 내가 아닌 운명의 힘이었을 거다. 물론, 운명의 여신이 늘 축복만 주는 건 아니다. 그래서 더욱 어린 시절, 편안하게 꿈을 꾸고 키울 수 있었다면 운이 마련해준 행복한 길이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한다. 채 꿈도 가꾸고 키우기전에 힘든 삶의 위기가 몰아닥치더라고. 그 위기 속을 빠져 나오느라 꿈을 포기하게 되고, 그저 아등바등 살아남기 위해만 몸부림쳤다고. 정신이 드니 자신도 모르는 어느 강가를 흐르고 있더라고.
내가 아는 냇물은 스스로 용기도 내고 힘도 키우면서 세진다. 그렇게 흘러온 어디쯤에서 넓은 바다의 거센 파도에 맞서기도 한다. 여울목 모험으로 단련된 냇물은 이미 냇물이 아니라 강물도 되었다. 스스로 자신의 용기와 역량을 통해 버티고 흘러왔음을 깨닫는다. 바다로 나선 강물, 강한 물. 거센 파도를 만나 이전처럼 버티기만 할까 싶다가도 냇물일적 꾸었던 꿈이 그리워져서 힘차게 가르는 은빛 물결사이도 언뜻 언뜻 기억날 듯도 한 꿈을 찾아보기로 마음먹으며 다시 흘러간다.
'여울목'은 운명이나 행운에만 의지하지 않고 살도록 깨우쳐 주는 트레이닝 코스인지도 모른다. 사실, 운명도 행운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믿고 싶은 ‘운이 좋아서’라는 것도, 실제로는 그렇게 만든 자신의 용기와 능력이 꽤 들어있을 수 있다. ‘그저 운이 좋았다’고 말하는 자는 겸손하게 표현하는 것일 확률이 높다.
매일 작고 작은 냇물로 시작해 흘러 흘러 강도 되고 바다도 될 터이다. 강이 이미 있고 바다도 이미 있을 것 같지만 나는 온전히 그들 어디쯤을 흘러만 가는 이방인같은 물이 아니라, 흘러가면서 만드는 세상의 주인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여기기 시작하면 운보다는 스스로 용기를 더 내고 기운을 발휘해서 만드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아는 물은 한순간도 멈추지 않는다. 오늘도 행운은 놓치지 않도록, 혹은 운명의 파도를 슬기롭게 넘어 갈 수 있도록, 용기를 낸다. 그 삶이 비루하다 해도 슬퍼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 흘러가면 되니까.
다시 냇가에 서서 그리운 물을 만나면 다정하게 말도 걸어볼 참이다. 오랜 친구기도 하지만 나 자신이기도 하니까. “오늘도 흘러가보자.”
(어째 자기계발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