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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틀란 Jan 17. 2021

실존의 구토, 한영애의 누구없소

나는 홀몸이다. (중략있다는 것이라곤 무질서하게 밀려오는 나날과 그리고 번갯불같이 돌연 생겨나는 마음속의 움직임이다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그러나 모든 것이 다른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나는 그것을 묘사할 줄 모른다그것은 마치 구토같은 것이지만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하여간 어떤 모험이 나에게 생긴다그래서 내가 자문할 때 나는 나이며나는 여기에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 생겨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이 어둠을 쪼개고 있는 것이 이다나는 소설의 주인공처럼 행복하다.


사르트르의 <구토> 중 한 대목이다. 

이런 생각을 이어주는 노래 한곡이 있다.      

여보세요, 누구없소? 

가수 한영애가 세상만사 모든 이치를 이미 다 안 것 같은 목소리로 묻는다.

 자주 들으며 내가 묻는 것처럼도 느껴진다. 

이 노래는 88년도 출생이다. 블루스 기타리스트이자 가수이고 작곡가인 윤명운씨가 낳았다.  

밥 딜런의 노랫말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전해진다.      


창문을 두드리는 달빛에 대답하듯 /검어진 골목길에 그냥 한번 불러봤소

새벽은 또 이렇게 나를 깨우치려 /유혹의 저녁빛에 물든 내 모습 지워주니

그것에 감사하듯 그냥 한번 불러 봤소     


쨍하게 추운 새벽녘, 겨울어둠에 갇혀 잠 못드는 자는 혼자다. 

무심코 흐르는 시간과 늘 제자리에 있었던 사물들이 ‘문득’ 눈에 들어오고, 의식속에서 살아난다. 

그렇게 찾아온 느낌으로 베란다를 서성이면 어느새 반달이 돼 버린 달빛만이 반긴다. 너도 외롭겠지. 

달빛이 선듯하게 다가오는 어둠속을 향해 외친다. “누구없소?”, “그게 누 있나?” 

그렇구나. 하루가 세수하고 나서기 시작하는 새벽이다. 

그 순간, 사르트르의 ‘구토’같은 새벽이 만져지기 시작한다. 

아무도 없는 줄만 알았더니 저기 새벽이 있구나. ‘월요일도 없고 일요일도 없었던’ 나는, 그저 뭔가 이뤄야 한다는 욕망과 그런 자신조차 느껴지지 않은 무개념사이에서 지쳐 가던 중이다. 

그 순간 찾아온 새벽이라는 시간과 달이라는, 어쩌면 실존의 깨달음같은 증세를 향해 다시 불러본다. 

누구없소? 이전의 누구없소? 와 지금이후의 누구없소? 는 이제 다르다.      


질문하는 자의 노래이다. 

다시 다가올 구토증세이후의 실존의 모험을 기꺼이 각오하며 자신을 향해 질문한다. 누구없소? 

지금부터 나는 ‘셀프 구토유발자’가 되기로 한다. 

구토 비슷한 문득으로 찾아오는 낯선 존재감, 그 존재감이 자주 찾아오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여기서 잠깐, 

누구없소? 왜 그동안은 이 질문을 나 자신외의 다른 이들과 사물들을 향해서만 해댔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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