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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틀란 Jan 15. 2021

공감은 사랑의 완성, 김종찬의 당신도 울고 있네요

오래전 유머다. 세계적인 명배우 소피아 로렌이 앵무새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그런데 이 앵무새는 소피아 로렌이 목욕을 할 때마다 몰래 훔쳐 보는 거다. 화가 난 소피아 로렌이 앵무새 머리를 빡빡 밀어 버렸다. 다음날 율 브리너가 놀러왔다. 그를 본 순간, 앵무새가 말했다. “너도 봤구나.” 

가볍게 웃으며 넘길 수도 있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같은 이유로 고통당했으리라 착각한데서 오는 격렬한 공감이 이야기의 열쇠다.     

즐겁고 행복한 일에 박수를 보내고 함께 웃어주고 공감하는 일은 쉽다. 그와 달리 남의 아픔에 공감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공감이란 단어자체가 ‘같이 고통받는’다는 의미다.  남의 고통에 즉시 참여하는 것이 공감이다.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노랫말 속 글자 하나, 조사하나 때문에 이전과 확연히 다르게 다가온 노래다. 김종찬의 <당신도 울고 있네요>. 1988년도에 발매된 음반에 실렸다. 박건호작사로 외래어가 한 단어도 섞이지 않고 썼단다. 

유행가이니 부담없이 들리는 대로 따라 불러왔는데, 다시 들어보니 청력을 의심할 일이 생긴다. 첫구절이 노랫말이 모두 ‘당신도 울고 있네요’ 인줄로만 알았다. 아니었다. 첫구절이 달랐다. ‘당신은 울고 있네요’ 였다. 사람들은 ‘들리는 대로 듣는 게 아니라, 듣고 싶은 대로’만 듣는다고 한다. ‘당신은’과 ‘당신도’의 한 글자인 조사하나 차이지만 하늘과 땅만큼 크게 느껴진다.     

당신은 울고 있네요 잊은 줄 알았었는데 /찻잔에 어리는 추억을 보며 당신도 울고 있네요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을 그 누가 알았던가요/옛날에 옛날에 내가 울듯이 당신도 울고 있네요    

처음에는 우는 사람을 객관적으로, 덤덤하게 바라본다. 아마도 쌓인 감정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내 함께 찻잔을 마주하던 추억이 떠올라 우는 사람을 이해하나보다. ‘당신도 울고 있네요’ 하고 공감하기 시작하니까. 훨씬 전에 사랑 때문에 아파서 울어본 마음이 움직인 것이리라. 

조지프 캠벨은 ‘공감의 위력을 발견한 사람은 성배를 발견한 사람’ 이라고 했다. ‘인디아나 존스’의 해리슨 포드가 죽자 살자 찾아다니던 성배가 그 聖杯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안에 있는 성배로 향하는 열쇠가 공감이라고 했다.     

한때는 당신을 미워했지요 남겨진 상처가 너무 아파서/

당신의 얼굴이 떠오를 때면 나 혼자 방황했었죠

당신도 울고있네요 잊은 줄 알았었는데/ 

옛날에 옛날에 내가 울듯이 당신도 울고있네요    

누구나 이유없이 홀로 남겨졌을 때, 떠나간 사람이나 기회를 원망도 하고 미워했던 사랑이 있을 것이다. 그래도 잊지 못해 울며 방황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연유인지 긴 세월을 돌아 마주친 사람이 그때의 자신처럼 울고 있는 것을 보니 공감이 된다. 지금 울고 있는 당사자보다 더 크게 그를 이해하는 모양새다. 이제는 바랄 게 없어서일지 모른다. 욕망을 거두었을테니까. 어쩌면 이전에 사랑했다고 믿었던 건 사랑이 아니라 욕망이었을 수 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마음을 준 만큼 받고 싶어 했던 계산이었을 것이다. 오래전에 아프게 울었던 과정을 통해 이제야 진짜 사랑의 의미를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자신과 그가, 자신의 겪었던 아픔이나 그가 겪었던 아픔이나, 다 같은 거라는 걸.     

나이를 먹으면 눈물이 많아지는 사람들이 있다. 옆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외면하는 일도 뜨겁게 눈물을 훔치며 가슴 쓸어내린다. 아픔과 고통을 통해 공감의 힘이 성숙했기 때문일 것이다. 가까이는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일본군 성 노예 할머니들의 아픔과 살 곳을 잃은 북극곰, 온 세계를 떠도는 난민들의 고통에 공감하며 자신을 온통 눈물로 적신다. 그들은 성배를 찾은 사람들일지 모른다.    

한편으로 보면 생존만을 위해 버둥거리며 살아가기도 한다. 생존이란 미명하에 남을 힘들게도 하고 오로지 자신만을 생각하며 사는게 나은 방법이라 믿게 되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왜 살려고 하는가? 사랑하기 위해서다. 사랑하기 위해 살아간다. 그 사랑의 완성은 내안에 있는 성배를 찾아 ‘또 다른 나’와 나누는 일이다. 새해에는 공감의 힘, 사랑의 힘을 더 많이 키우려 한다. 고통도 슬픔도 공감하고 끌어안으면 사랑이다. 아, ‘당신도 울고 있네요’ 하고 말이다. 올해는 힘든 상황속에서도 각각의 마음속 성배가 서로를 비춰주며 살아갈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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