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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틀란 Jan 15. 2021

삶의 루틴이 된 노래, 김현식의 내사랑 내곁에

가끔 요상한 노래도 만난다. 무슨 고기부위도 아니고 사람들마다 좋아하는 구절이 각기 다른 노래다.    


“이별하는 순간이 너의 웃음 뒤에 같이 있다잖아. 너무 낭만적이지 않아?“    


“거긴 별로야. 여기 봐. 철이 없어서 욕심을 부렸고 미련이 많아서 그동안 당신이 있었냐고 묻는 부분, 실컷 묻고는, 자존심 때문에 다시 ‘아니겠지요’ 라고 되물어, 캬!”    


“시간이 흘러서 그냥 집으로 가지는 건데, 시간자체가 멀어짐으로 향해간대. 이거 완전 SF잖아? 그리고 끝난 거 확인하고 같이 걷던 그길을 혼자 가봤니? 얼마나 낯설고 서러운데, 에잇, 경험해봐서 알아.”    


“그거 아니? 그렇게 터벅터벅 집으로 가는데, 속이 답답해서 한숨이 나와. 큰 호흡하며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봐. 그때 눈물때문인지, 정신이 혼미해선지, 나뭇가지가 여리여리하게 보이고 이제 진짜 혼자구나 싶은 거야. 그때 깨달아. 천상천하유아독존.”    


“너무 나간 거 아냐?”    


나의 모든 사랑이 떠나가는 날이 당신의 그 웃음 뒤에서 함께 하는데

철이 없는 욕심에 그 많은 미련에 당신이 있는 건 아닌지 아니겠지요

시간은 멀어짐으로 향해 가는데 약속했던 그대만은 올 줄을 모르고

애써 웃음 지으며 돌아오는 길은 왜 그리도 낯설고 멀기만 한지    

‘저 여린 가지 사이로 혼자인 날 느낄 때’ 이렇게 아픈 그대 기억이 날까

내 사랑 그대 내곁에 있어줘 ...(중략)

힘 겨운 날에 너마저 떠나면 비틀 거릴 내가 안길 곳은 어디에     


우리노래의 올디스 벗 구디스, 80년대말 나온 김현식의 <내사랑 내곁에>이다. 술 마시면 나지막하게, 누군가와 한판 붙고 싶을 때는 고래고래 고함치며 불렀다. 하루 일과 마치고 늦은 밤 털레털레, 무거움을 내려놓는 걸음으로 아파트로 들어설 때도 흥얼거렸다. 세월이 흘러 뭔가 결정할 수 없어 며칠이고 머리카락 새는 소리가 들릴 때도 어느새 이 구절을 읊조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달님이 큼지막하게 걸려있는 로맨틱한 밤에 눈맞춤할 때도 이 노래를 흥얼거린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일로 돈을 벌어 생계를 꾸리지만, 그 일로 깨달음도 얻는다. 노래를 듣고 삶을 제대로 사는 법을 깨칠 수 있을까? 노래 듣는 일이 業인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만들지도 않고 잘 부를 줄도 모르지만, 듣고 들려주기로만 평생이다. 그래도 노래로 사는 법을 배운 셈인데, 그 노래들 중에 김현식의 이 노래가 있다. 

김현식이 자신의 삶 끝자락에서 불렀던 노래, <내사랑 내곁에>는 토하듯 밀어내며 읊조리는 창법부터 가슴을 흔든다. 무엇이 이렇게도 이 가수의 노래를 처연하게 만들었을까. 소리를 다듬지도 않고, 막 내지르는 것 같지만 소망의 끝자락을 놓지 않고 있었던 것 같다. 살고 싶은 욕망을 노래에 담았구나... 노래가 인생자체인 곡이다. 사는 게 외롭고 시릴 때 불러보면 딱이다.      

사람마다 좋은 구절이 제각각인 노래지만 일편단심 이 구절이 좋다. 

‘저 여린 가지 사이로 혼자인 날 느낄 때’이다.  


사랑이든 일이든 끝에 다다르면 끝이란 사실자체보다, 자신 속 남은 미련과 욕심이 스스로를 괴롭혀서 참기 힘든 순간이 온다. 왜 떨치지 못하는가! 어떻게든 자존심을 추스르며 발을 떼놓으려 할 때는 이전과 다른 길이 펼쳐져 있다. 낯설고 시리다. 잠시 올려다본 하늘에 가까스로 걸려있는 나뭇가지 사이로 달이었던가, 별이었던가. 그것이 자신의 모습이라 여겨지며, 인생에 대한 깨달음이 온다. ‘아, 나는 혼자이구나, 결국 인생은 혼자 가야 하는 길이로구나.’ 한번, 혹은 몇번 그러고 나면, 다시 그 길을 걸어갈 때는 혼자여도 덜 아프다. 아픈 기억은 있지만, 통증으로 오지는 않는다. 아픈 느낌을 조금씩 털어버릴 수 있게 된다. 시간이 해결해주는 부분을 넘어선다.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고 생각의 지평이 넓어지기 시작한다. 사랑과 인생이 통째로 보일 때도 있다.    


깨달음은 되풀이 될수록 힘이 세진다. 매일 매일 오만가지 생각을 하고 사는 우리이니, 걱정이 생기고, 사람과의 갈등으로 어찌해야 좋을지 결정해야할 때, 자신도 모르게 이 노래를 흥얼거리게 된다는 이야기다. 삶의 루틴이 된 노래구절을 다시 한번 불러보자.  ‘저 여린 가지 사이로 혼자인 날 느낄 때..혼자인 날 느낄 때...’. 그래, 인생 혼자인 거지만, 음...음...나는 나일뿐이다. 순간, 노래도 멈춰지고 김현식의 껄껄한 음성이 내 마음과 겹쳐지면서 ‘할!’한다. 생각이 뚝 끊기고 고요해진다. 가지 끝 지금까지 알아채지 못했던 나뭇잎 하나가 천천히, 고요하게 내 마음의 속도로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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