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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자까 Apr 17. 2021

진실의 파편들이 밝혀낸
그날의 거짓말

<아메리칸 머더: 이웃집 살인 사건>, 방자까의 영화 리뷰

여러분은 다큐멘터리를 왜 좋아하시나요? 다큐멘터리의 매력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저는 다큐멘터리의 제1 매력은 누가 뭐래도 비정형화된 제작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다큐멘터리 장르에도 통용되는 법칙은 있습니다만, 감독에 따라 사실을 보여주고 구성하는 방식이 다르므로 관람하는 내내 지루하지가 않아 좋습니다. 이번에 시청한 작품은 제작 방식이 독특하다고 하여 특히 더 기대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역시, 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지요. 


아메리칸 머더: 이웃집 살인 사건
American Murder: The Family Next Door

처음엔 영화의 부제(이웃집 살인 사건)를 보고, 그녀의 이웃 중 한 명이 진범이겠거니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이웃들의 얼굴을 유심히 보았지요. ‘과연 착한 이웃의 탈을 쓴 악마는 누구인가?’ 하고요. 그런데 저는 잊고 있었습니다. 부부 중 한 명이 범죄로 인해 사망할 경우, 가장 먼저 용의자로 의심받는 사람이 배우자라는 것을요. 영화 역시 이렇게 말하며 끝을 냅니다. 


미국에서는 하루에 3명의 여자가 남편 또는 파트너에게 살해당하고, 파트너와 자식을 죽이는 것은 보통 남성이며, 이런 범죄는 사전에 계획된다.

 

섀넌 와츠와 배 속의 아이를 죽이고, 남은 두 아이를 기름 탱크에 넣어 살해한 범인은 섀넌의 이웃이 아닌, 그녀의 남편 ‘크리스토퍼 와츠’였습니다. 

 

이 작품은 일반적인 다큐멘터리에 흔히 등장하는 관계자의 인터뷰나 별도의 내레이션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니 관객에게도 감독의 주관적 의견 없이 사건 발생부터 종결까지 실제로 수집된 증거들만 제시한 셈입니다. 저는 그 과정을 하나하나 따라가면서도 남편이 범인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웃집 주민이 크리스토퍼가 약 50분간 트럭에 무언가를 싣는 장면이 찍힌 자신의 CCTV 화면을 경찰에게 보여주며 ‘크리스토퍼가 수상하다’고 말할 때도 저는 되려 그 이웃집 주민을 의심했으니까요. 

 

‘이웃집 살인 사건’이라는 부제의 진의는 이와 같은 사건이 우리의 이웃집에서도 언제든지 벌어질 수 있는 흔한 사건이라는 암울한 현실을 되짚어주는 것입니다. 자신의 가정을 몰살하는 잔혹한 범죄가 이웃집에서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데요. 심지어 크리스토퍼 와츠는 고작 '편하게 바람을 피우기 위해' 이 일을 저지른 것이었죠. 이혼의 절차를 밟을 생각보다 8년을 함께 산 아내와 세 명의 자식을 죽일 생각을 먼저 했다는 게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추가 촬영본 없이 경찰의 녹취록과 보디캠, 언론의 보도 장면, 이웃집의 CCTV 화면, '섀넌 와츠'의 소셜 미디어 속 사진과 영상 등 사건과 관계된 미디어만을 재구성해 만들었습니다. 때문에 영화를 보다 보면 마치 눈앞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목격하고 있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놀랍지 않나요? 우리의 모습이 기록되는 미디어가 1시간 반가량의 영화 한 편을 채울 만큼 가득하다는 사실이 말이죠.

 

코로나 대유행이 시작됐을 때, 미국에서는 확진자의 동선을 공개하는 것을 극도로 반대했다고 합니다. 사생활 침해라는 이유로요.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코로나 확진자의 동선이 철저하게 공개했습니다. 공개되든, 공개되지 않든, 두 경우 모두 한 인간의 이동 경로를 밝힐 수 있을 만큼 수많은 카메라가 우리를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저는 종종 이처럼 '감시당하는 삶'은 과연 우리에게 득인가, 실인가 고민해보곤 합니다. 이 사건에서는 CCTV, 보디캠 등의 자료가 없었다면 크리스토퍼의 고의성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물론 이 XX가 방송국 카메라에 대고 자신의 부인과 딸들을 얼른 돌려보내 달라는 파렴치한 거짓말을 하며 자신의 고의성을 스스로 전 세계에 알리긴 했지만요. 이웃집의 CCTV가 없었다면 크리스토퍼가 아내의 시신과 살아있는 두 딸을 데리고 시신 유기 장소로 떠나는 순간을 포착하지 못했을 것이고, 경찰의 보디캠이 없었다면 이 사건을 실종 사건인 양 꾸미려 했던 크리스토퍼의 얼토당토않은 거짓말들을 관계자들의 입을 통해서만 전해 들을 수 있었겠죠. 

 

저는 감시 당하는 삶의 역기능보단 순기능이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감시 카메라에 찍히는 게 부끄러울 일이라면 하지 마세요. 그건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하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흩어진 사건의 조각들을 정렬하는 과정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면, 어느 순간 비열한 거짓말로 자신이 초래한 비극을 숨기려는 어리석은 한 사람이 보입니다. 처음엔 믿을 수조차 없는 진실에 얼이 빠지고, 두 번째엔 북받치는 분노를 참을 수 없습니다. 아빠의 손에 의해 기름 탱크에 빠져 죽은 아이가 ‘아빠는 히어로’라며 노래를 부르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영화를 다 보고, 감상평을 다 써낸 지금도 왜 섀넌과 아이들이 죽어야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Summary

섀넌 와츠와 자녀들의 실종, 이후에 벌어진 끔찍한 사건. 임신부 가족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 경찰과 언론, 섀넌이 직접 찍은 날것의 영상을 사용해 제작한 다큐멘터리. (출처: 넷플릭스)


Cast

감독: 제니 포플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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