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방자까 Apr 17. 2021

미술품 위조 사건의 피해자는
과연 누구인가?

<당신의 눈을 속이다: 세기의 미술품 위조 사건>, 방자까의 영화 리뷰

이번에 감상한 다큐멘터리 영화는 <당신의 눈을 속이다: 세기의 미술품 위조 사건>입니다. 왜 넷플릭스에 올라오는 다큐멘터리는 항상 제목이 길까요?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오늘의 포스팅에서는 <세기의 미술품 위조 사건>으로 줄여 부르겠습니다. 이것도 여전히 길다는 것이 함정이군요.


당신의 눈을 속이다:
세기의 미술품 위조 사건
Made You Look:
A True Story About Fake Art

한 문장으로 간추리자면, <세기의 미술품 위조 사건>은 ‘오랜 명성의 노들러 갤러리에서 8,070만 달러의 위조품이 거래된 것은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를 사건의 흐름에 따라 물어가는 작품입니다.




영화를 갓 보기 시작했을 때는 노들러 갤러리의 운영자 ‘앤 프리드먼’이 위조품 거래에 공모한 것이 명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공모자가 아니라면 미술품 전문 딜러가 위조품을 10년 넘게 거래해왔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사건의 전모를 듣다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사기라는 게, 치려고 마음먹으면 당하는 사람은 절대 피할 수 없는 교활한 범죄라고 하니까요.


꼭 사기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종종 명백히 나타나는 위험 신호를 무시하곤 합니다. 다큐멘터리에서는 ‘전력을 다해 결핍을 모른 척하는 것이 꼭 사랑에 빠지는 과정과 비슷하다’고 말하기도 하죠.


사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친구들과 5박 7일로 베트남 여행을 떠났을 때였습니다. 다섯 밤을 지낼 수 있도록 숙소도 미리 잡아두고, 설레는 마음으로 여행길에 올랐죠.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어느덧 마지막 날 밤이 되었습니다. 숙소에서 TV를 보며 친구들과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있는데, ‘띠링’ 항공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비행기가 연착될 예정이니 참고하라는 메시지였죠. 저는 생각했습니다. ‘되게 친절한 여행사네. 내일 연착될 비행기를 미리 알려주다니!’ 친구들도 이 문자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마저 여행 마지막 날의 회포를 풀었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다음날 공항에서 비행기를 놓쳤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요? 애초에 항공권을 구매할 때부터 계획했던 날짜보다 하루 앞선 날짜의 티켓을 구매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포함한 일행 모두가 여행을 떠난다는 기쁨에 취한 나머지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고요. 


결국 자정이 넘은 새벽, 타지의 공항에서 저희는 당장 구할 수 있는 한국행 티켓을 찾아 공항을 수소문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저희가 아주 명백히 나타난 위험 신호를 무시했기 때문이죠. 어떤 항공사가 내일 뜰 비행기의 연착 알림을 24시간 전에 보내주겠어요? 정말 어리석고 바보 같지만, 위험 신호도 때로 전혀 위험하지 않게 느껴질 때가 있더군요. 




다큐멘터리는 시작부터 이러한 안내를 띄웁니다. ‘실명을 그대로 사용하여 무고한 피해자를 보호하고자 했다. 어떤 이들은 완전히 무고하지 않지만.’ 그렇다면 이 사건의 무고한 피해자는 과연 누구일까요?


영화는 고가에 거래되었던 작품이 위조로 판명된 이후, 변호사 사무실 벽에 무방비하게 걸려있는 것을 보여주며 끝을 냅니다. 우리 모두 알고 있듯이 일전에 고가로 거래됐던 미술품과 변호사 사무실에 걸려있는 미술품은 결국 같은 작품이지요. 전문가들도 혀를 내두를 만큼 완성도 있고 아름다운 작품이었습니다. 


단지 위조품으로 판명 났다는 이유만으로 작품의 가치가 하락한다는 건 조금은 아이러니한 일 같습니다. 작품은 물리적으로 변한 게 없으니까요. 저는 미술에 관해 잘 모르지만, 8,070만 달러, 한화로 약 900억 상당의 미술품 위조 사건의 무고한 피해자는 어쩌면 ‘미술 작품’ 그 자체뿐 아닐까요? 진품 여부, 희귀성 등에 따라 한순간에 휴짓조각이 되어버리는 미술품의 가치. 미술품을 대하는 우리의 방식 또한 이 사기 사건과 완전히 무관하다고 보긴 어려울 듯합니다.




미술에 일가견이 없는 저 같은 사람도 흥미롭게 본 영화이니, 거부감 없이 한 번쯤은 시청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미술품의 가치를 판단하는 데 ‘소장 이력’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가, ‘카탈로그 레조네’란 무엇인가 등 미술품에 관한 약간의 지식도 얻을 수 있답니다.


Summary

추상표현주의 대가들의 미공개 미술품을 들고 뉴욕의 한 갤러리를 찾아온 여성. 검증되지 않은 출처, 터무니없이 싼 가격, 탐욕에 눈이 멀어 여러 허점을 무시한 딜러와 전문가들. 미국 미술 역사상 최악의 사기극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출처: 넷플릭스)


Cast

감독: 배리 애브리치
매거진의 이전글 실리콘 밸리에서 소셜 미디어를 주의하라고 경고하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